◎그동안 개별상품 손익 잘 모른채 「이문」 계산/시장개방에 위기감… 연말 목표 “종종걸음”지난 15일 하오 6시 은행감독원 7층회의실.
은행감독원 직원 3명을 비롯해 서울과 지방 각지에서 온 은행실무자 15명이 복잡한 서류뭉치와 전자계산기를 앞에 놓고 4시간째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자,그러면 은행적금 중에서는 가계적금과 기업적금을 별도의 단위로 구분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원가를 산출하게 될 금융상품의 기본단위 설정작업은 일단 마무리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끝에 금융상품의 원가단위를 최종정리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은행권의 숙제로 남아 있던 금융상품별 원가를 산출하기 위해 각 은행에서 파견나온 베테랑들.
은행들은 예금금리나 대출금리 신용카드수수료나 외환수수료 등의 각종 금융상품 가격결정시 도대체 취급경비가 얼마나 드는지 정확한 원가산정작업 없이 대충 주먹구구식을 벗어나지 못했고 많은 경우 수지타산도 할 수 없었다. 원가를 모른 채 장사를 해왔으므로 말이 상업은행이었지 상업적 기업으로서의 기본적인 조건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예대마진폭은 산출을 한다. 지난해의 경우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에서 평균 예금금리를 뺀 단순예대마진을 4.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금융상품별 손익은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전체적인 이문폭을 계산한 것. 여기에서 인건비를 비롯한 취급경비를 빼고 난 실질예대마진은 마이너스거나 0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느 상품이 은행에 이익을 남겨 주고 어느 상품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채 막연히 「이익없는 장사」를 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은행들이 연간 수백억 원씩의 이익을 올리는 것은 남의 돈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기자본만 1조원 가량 되는 탓에 가능했던 일로 증자 등으로 얻은 제돈 갖고 장사를 한 것이다.
이같은 전근대적인 가격체계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발달을 제약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들은 특정상품이 분명 손해인 것 같아서 값을 올렸다가도 근거를 대라는 고객들의 반발에 부딪쳐 하릴없이 도로 종전가격으로 환원하는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시중은행들은 외환송금수수료를 종전 2천∼5천원에서 5천∼1만원으로,수출신용장 통지수수료를 건당 8천원에서 1만원으로 각각 올렸다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하느냐는 업계의 반발에 부딪쳐 3개월 만에 취소하고 말았다. 교통비용만 해도 기름값이 올라서 몇 %의 인상요인이 있고 인건비가 올라서 몇 %의 인상요인이 발생했다고 원가부담 수치를 밝히는 데 비해 나름대로 첨단서비스산업이라는 금융산업에 기초원가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국내 은행의 주먹구구식 가격체계는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한 원가체계를 갖추고 있는 미국과 일본 등 서구 은행들이 시장개방을 틈타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금융상품 가격결정의 주도권을 완전히 외국에 빼앗겨 쉽사리 시장잠식을 허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감독원은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1년간의 장기계획으로 「금융상품 원가산정전담반」을 구성하기에 이른 것.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씩 모여 일단 원가를 산정할 금융상품의 최저 기본단위는 산정해 놓은 상태.금융상품은 거의가 TV나 신발 등과 달리 형체가 없는 서비스상품이기 때문에 최소원가단위를 결정하는 데도 적지 않은 고역을 치려야 했다고 전담반은 밝혔다. 최소원가단위는 예금·대출상품 60여 개,외환수수료상품 50여 개,신탁상품 20여 개,신용카드수수료 지로 등 기타부문 20여 개로 모두 합쳐 1백50개 정도다.
올해말까지 이 1백50개의 금융상품에 대해 상품별로 원가명세서가 산출되는 것이다.
전담반은 서울 소재 시중은행에서 각 1명,지방은행 중에서는 대구 부산 경기 광주 경남 등 5개 은행에서 각 1명,국책은행에서는 중소기업은행 1명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방은행들은 1주일에 한 번 꼴로 서울로 출장을 오며 참가하고 있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금융상품의 원가산정은 은행의 과학적 경영을 위한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홍선근 기자>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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