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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의 재판/차분한 박노해씨 적부심(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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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의 재판/차분한 박노해씨 적부심(등대)

입력
1991.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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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동자이자 노동혁명가이며 노동시인이기도 합니다』16일 상오 10시30분 서울형사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박노해씨(33·본명 박기평)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재판부의 인정신문에 박씨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한가지로 줄이라면 노동혁명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검거 때의 붉은 무늬 머플러,고동색 점퍼차림으로 입정한 박씨는 방청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뒤 1시간15분 동안 신문에 응해 몸파는 여성들,열악한 노동현장을 예로 들며 『결국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모순해결의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자신을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강조하면서도 북한을 찬양하거나 무장봉기를 획책하려 한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개념을 계승하되 민중이 모든 재산을 공유해 선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변호인이 안기부에 연행된 이후의 생활을 묻자 박씨는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며칠 동안 잠 안 재우기,집단폭행,심한 욕설 등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다』며 한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변호인이 신부가 된 형과 수녀가 된 여동생에 대해 묻자 『못 본지 5∼6년이나 됐다』며 울먹였으며 먼저 구속된 부인 김진주씨(36)에 대해 말할 때는 『감정이 격해졌으니 시간을 달라』고 요청,잠시 눈을 감고 애써 냉정을 되찾기도 했다.

심리가 끝날 무렵 변호인의 요청으로 어머니 김옥순씨(65)와 형,여동생은 법정 앞으로 나와 박씨와 잠시 만났다. 이때 김씨는 『진정으로 효도하는 길은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아들을 격려했다.

시종 차분하던 박씨는 심리가 끝난 뒤 갑자기 수갑찬 주먹을 들고 『가라 자본가 세상,쟁취하자 노동자해방』이라고 외치면서 수사관에 떼밀려 법정 밖으로 나갔다.

이날 법정은 「거물」의 재판답지 않게 차분했으며 구속적부심과 직접 관련없는 답변에 두 차례 제동이 걸린 정도였다. 재판부는 18일 석방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홍윤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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