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의·안이… 수사 곳곳 구멍/계좌관리등 공조도 안돼/지정 장소 20대 망설이는틈 도주/경관 넷 잠복중 「가짜 돈가방」 증발/은행단말기도 소홀 3번째 실패유괴 살해된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이형호군(9)은 경찰의 게으른 수사로 구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비공개로 44일 동안 수사해 온 경찰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3번이나 놓쳤으며 형호군이 살해된 시점이 1주일 전이란 사실이 공개수사가 시작된 14일 밝혀지자 경찰의 소극적이고 안일한 수사태도 때문에 구출할 수 있었던 형호군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범인이 지정한 약속 장소에서 잠복중 범인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접근했는데도 망설이다 놓쳤는가 하면 위장한 돈가방을 20여 m 앞에서 가져가는 것도 한 눈을 팔다 놓치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거듭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은행 및 타경찰서와의 공조체제를 갖추지 않아 범인이 돈을 인출하러 은행에 나타난 것도 놓쳤다.

▷1차 실패◁

지난달 1일 새벽 2시30분께 범인이 지정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대로변에 이군의 아버지 이우실씨(35)가 돈을 갖고 차 안에 있을 때 범인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접근한 뒤 버스정류장 옆 가판대에 몸을 숨기고 주변동정을 살폈다.

이때 교보문고 현관 앞에 경찰관과 함께 잠복해 있던 이씨의 동거여인 이 모씨(28)가 『범인인 것 같다』고 말했으나 경찰이 머뭇거리는 사이 이 청년은 달아났다.

범인은 이날 밤 이씨 집에 전화를 걸어 『왜 경찰을 잠복시켰느냐』고 항의하고 이를 부인하자 경찰관의 인상착의까지 댈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실패◁

지난달 13일 하오 5시30분께 아버지 이씨가 범인으로부터 『서울대교 남단 석조물 위에 놓아둔 메모대로 행동하라』는 전화를 받고 나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린 뒤 여기에 씌어진 대로 이날 밤 10시10분께 양화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옆 철제배전판 위에 가짜돈(신문지뭉치)이 든 쇼핑백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잠복경찰 4명은 장소를 착각,이곳에서 고수부지 쪽으로 20여 m 떨어진 곳에 있는 철제의자 쪽만을 보고 있다 쇼핑백이 사라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범인은 다음날 새벽 1시께 이씨 집에 전화를 걸어 『쇼핑백을 잘 받았다』며 냉소적으로 말한 뒤 끊었다.

경찰은 범인이 차량통행이 많은 시간대를 이용,차를 탄 채 지나가며 쇼핑백을 채간 것으로 보고 있다.

▷3차 실패◁

지난달 19일 하오 3시께 범인이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 전화를 걸어 2천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은행에 나타나 7백만원을 인출하려다 담당직원 임 모양(27)이 컴퓨터조회결과 「주의경고」라는 자막이 나와 『인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그대로 달아났다.

경찰은 범인이 온라인 송금은행으로 지정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측에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협조를 요청했으나 컴퓨터확인시 「범죄관련 계좌이니 경찰에 신고 바란다」는 자막 대신 「주의경고」 자막만 나오는 노후한 단말기가 있는 일부 지점에 대해 관할경찰서와 공조,대비책을 세우지 않아 검거에 실패했다.

▷수사◁

◎성문 비슷 20대 2명 조사

경찰은 14일 하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군의 사체부검을 의뢰,이군이 1주일 전쯤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냈다.

경찰은 이날 유력한 제보자에게 1천만원을 현상금으로 걸고 범인검거 경찰관(경위 이하)은 1계급 특진시키기로 하는 한편 수사본부를 확대,시경 3부장 이완구 경무관을 수사본부장으로 새로 임명하고 시내 전경찰서에 공조수사 체제를 갖췄다.

경찰은 숨진 이군의 주변인물인 이 모씨(29·무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음성판독결과 성문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사건발생 이후의 행적을 캐고 있으나 이씨는 알리바이를 주장,범행을 강력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사건발생 후 이씨 주변에서 자주 목격된 신 모씨(28·H사 외판원)도 범인과 목소리가 비슷해 혐의점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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