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질적으로 성숙한 사회발전을 이룩하느냐,그렇지 못하느냐의 분기점에 서서 혼란과 방황,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올바른 진단,올바른 처방까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도권 전반의 지도력 상실과 대중의 정치역량 빈곤으로 올바른 진입로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사회가 발전하는 데는 아마도 몇 단계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문제,먹고 사는 의식주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 경제성장과 분배를 조화시켜 누구나 정당한 노동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확실히 의미있는 발전이라는 것이다.
또 갈수록 다양화,분권화,복잡해지는 사회체제를 보다 기능적으로 운영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는 오늘날 우루과이라운드의 파고에 시달리고 있으면 안으로는 범죄,일탈,교육,의료,공해,교통,물가 등 생활에 직결된 많은 문제들에 마주치고 있다. 따라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각 분야 전문가의 지혜를 모아 이런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사회를 관리함에 있어 기능주의적 합리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다른 질적인 문제도 있다. 앞의 두 과제가 우리 사회에서 원만히 해결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제3의 과제,즉 사회관계의 윤리적 기초를 쇄신하려는 새로운 시민운동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개개인의 신념,사상,취향,종교,미학적 판단에 따른 실존적 윤리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대부분 공유하는 사회적 유토피아다.
이것은 모순에 찬 현실로부터 탈출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발전의 윤리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대부분이 느낀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며 사회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규범이다. 이 기대가 현실 안에서 명백히 거부되고 있음이 드러날 때 윤리적 저항은 불가피해진다.
이점에서 「수서사건」은 매우 시사적이다. 우선 이 사건은 폭력적 억압에도 반대하지만 원칙없는 타협으로 비리를 적당히 얼버무리는 지난날의 관행에 대해서도 의문을 느끼는 젊고 근대적인 세력이 크게 성장한 상황에서 터졌다. 또 엄청난 부패구조에 야당도 연루되었음이 드러났다. 언론인도 다수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사회지도층 전체의 도덕성을 실추시키는 비리들이 근래 계속 터지고 있다.
이로써 형성된 새로운 갈등은 종래의 여야 관계,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권력을 둘러싼 정치투쟁과는 구별된다.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윤리적으로 별차이가 없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념적인 보혁갈등도 아니며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계급갈등 또는 이익집단의 대립도 아니다.
이 새로운 갈등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다.
여야를 떠나 체제 전체의 비리를 청산하고 진실을 밝혀 사회관계의 윤리적 기초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다는 민중적 자각운동이라 할 수 있다. 재야 일각은 이를 계기로 정권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서사건」 자체가 곧장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사건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기혁신과 도덕적 기강확립으로 새로운 발전을 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은 현재 많은 장애에 부딪치고 있지만 아직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현 집권세력은 기초의회선거 조기실시로 「수서사건」의 압박을 피해가고 싶을 것이나 분명한 점은 지자제선거는 선거고 「수서」 진상규명은 별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에 임하는 우리 자세에도 보다 투철한 도덕성이 필요한 것 같다. 30년 만에 실시되는 지방의회선거가 왜 현재와 같은 극심한 여야 대립,정부의 위압적 태도,유권자의 무관심 속에 치러져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지만 이 혼란과 무정견의 배후를 응시해보면 결국 도전받는 제도권 세력의 임기응변적 자기방어가 바닥에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조를 근원적으로 혁파하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은 분명해지지 않나 생각된다. 돈 많이 쓰는 후보,축재과정이 의문스러운 사람,친여적인 인사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정당인보다는 양심적인 시민이 좋고,지역봉사와 더불어 민주화에 협조적인 후보를 뽑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만일 졸속 조기선거로 인해 진정 뽑을 만한 후보가 없을 경우,우리는 강요된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거부할 것인지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시민으로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공명선거에 참여하면서 「수서」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만일 정부·여당이 기도하듯이 그들의 「여론관리」 기술에 의해 이 사건이 덮여진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양심과 도덕에 먹칠을 가하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또 사회발전의 도덕적 에너지도 유실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 이에 관해서는 특히 언론이 분발할 점이 많고 생각해야 할 점이 많을 줄 안다. 언론이 자기비판으로 성숙한 사회발전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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