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가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 청나라 땅을 밟은 것은 2백13년 전인 정조임금 2년 때였다. 청나라를 오랑캐라고만 멸시했던 조선왕조의 지식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그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북학의」라는 책으로 엮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과거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남자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과거만한 게 없다』고 박제가는 비웃었다. 재물도 명성도 권세도 과거에 성공하면 제물에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과거에 급제해야만 사람행세를 할 수 있으니 평생을 글공부로 늙은 사람도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대학에 가야 사람대접 받는 판이니 재수·삼수를 하는 것과 같다. ◆지난달 대한상의는 대학에 가지 않고 일한 고졸 사원의 4년 뒤 임금이 대졸 신입사원보다 많다는 조사결과를 내놔 화제가 됐었다. 소위 「학력별 임금격차」가 줄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졸 신입사원과 고졸 4년 사원의 임금이 비슷해졌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세월이 갈수록 대졸사원이 앞서는게 문제다. ◆한국의 대졸사원 전체를 놓고 볼 때 고졸 취업자보다 2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 있다. 고졸 취업자 임금을 1백으로 했을 때 대졸 취업자는 1백91을 받고 있다(89년도). 일본은 1백38,대만은 1백7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아직도 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불리한 여건을 뚫고 자기 분야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고졸 출신도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금융계 인사이동에 고졸 출신 은행장이 5명이나 생겼다. 이현기 상업은행장,윤순정 한일은행장,나응찬 신한은행장,안영모 동화은행장,황창익 충북은행장 등이다. 학력이 아니라 능력사회로 가는 디딤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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