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진 불명확 불구 현지선 갖가지 시나리오/요르단과 연합국가안 유력/「이」·PLO 반대 소지도 많아걸프전 이후 중동국가를 순방중인 제임스·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중동문제 해결의 핵심적 카드를 쥐고 있는 이스라엘을 11일부터 방문하고 있다.
베이커는 국무장관 취임 이래 처음 이스라엘을 방문,첫날 다비드·레비 이스라엘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시발로 12일에는 이츠하크·샤미르 총리 및 모셰·아렌스 국방과 회담을 가졌다.
특히 이날 하오에는 필립·윌콕스 이스라엘 주재 미국 총영사관저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표와 면담,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이커 장관은 이스라엘 방문에 앞서 팔레스타인인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예루살렘 동부지역을 방문할 뜻을 강력히 비쳤으나 베이커 방문을 앞두고 발생한 아랍인의 이스라엘 여인 살해사건 등으로 인해 이 계획은 취소됐다.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불쾌감 표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PLO 대표와 접촉한 사실은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전례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베이커의 행동은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를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문제에 관한 미국의 구상과 깊은 맥락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이곳 현지에서 갖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평가돼 온 이스라엘 점령지와 요르단간의 연합국가 수립방안이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여러 복안 중에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연합국가 구상은 이스라엘이 지난 67년 3차 중동전 이후 점령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요르단과 통합,연합(Confederation) 혹은 연방(Federation)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구상은 새로운 연합국가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안보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비무장지대로 만든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지난 80년부터 제기돼 온 이 같은 연합국가 구상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배경은 우선 미국이 이 방안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감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9일 아랍국가 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연합국가 수립방안이 가장 현실적 해결책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미국이 향후 팔레스타인문제 해결과정에서 이 구상을 추진할 것임을 강력히 암시했다.
연합국가방안이 현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첫째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지형적으로 평탄한 이스라엘영토에 비해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안보를 위해서도 이스라엘이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반환할 경우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로 만드는 것은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둘째 이유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만으로는 독립된 주권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지역을 모두 합쳐야 면적이 1만㎢가 되지 못하며 특히 산업의 90% 정도가 재래식 농업뿐이어서 독자적인 경제권을 형성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점령지내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능한 한 소개시키기 위해 기반산업시설을 전혀 설치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요르단과 통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셋째 이유로는 두 지역의 역사적 연대관계와 주민의 동질성을 들 수 있다. 요르단은 이미 지난 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합병했었다. 이 합병조치는 요르단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뤄졌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합병을 강력히 반대하지는 않았었다. 또 현재 3백만명에 이르는 요르단 인구의 절반은 팔레스타인인이어서 요르단은 팔레스타인국가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배경에서 연합국가 방안은 많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요르단정부 양쪽으로부터 묵시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불안정한 연합(Confederation)국가 형태보다는 연방(Federation) 국가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물론 이 방안도 이스라엘과 PLO 양측으로부터 배척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이 과연 미국이 권한다고 점령지를 선뜻 반환할 것인지도 회의적이려니와 PLO 강경세력의 강력한 반대도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팔레스타인문제 해결방식은 베이커 국무장관의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스라엘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화해 등을 통해 점령지 반환을 결심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보다는 요르단과의 연합국가를 선택하는 쪽이 자국의 안보에 휠씬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예루살렘=배정근 특파원>예루살렘=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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