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를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영어의 그라스루트(Grass root)를 그대로 직역해 쓰다 보니 생긴 용어이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지자제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미루어볼 때 「모내기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 더 온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방에서 이미 민주주의가 정착돼 있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건국 43년 사이에 중앙에서조차 민주주의 뿌리가 내릴 듯 말 듯한 수준에서 지방민주주의의 자생력을 얘기하는 것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이제 후보등록마감을 3일 앞둔 지자제기초의회 의원선거를 앞두고 돌아가는 정국과 선거운동 양상을 보면 한층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중앙에서 「민주주의」란 모를 가져다가 지방에 어거지로 옮겨 심는 이양과정에서 갖가지 부작용과 역기능이 발생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30년 만에 역사적인 지자제를 맞이한다면서 여야가 마련해 놓은 지자제선거법이라는 게 한쪽으로는 정당개입을 금하고 있고 다른 쪽으로는 음성적으로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게 길을 터 놓는 등 모순투성이의 누더기 입법이요,풀뿌리 민주주의라면서 중앙의 정당들이 사생결단을 하듯 전력투구하는 꼴을 보면 참다운 지자제정신은 실종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치꾼이나 정당의 지방조직 전면가동이나,날뛰는 후보군의 대거진출도 진정한 동네 일꾼을 뽑는 분위기가 아니다.
선거법을 악법으로 만들어 놨으니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 그래서 중앙선관위는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격」이 돼 가고 있고,내무·법무장관이 공정선거,선거사범 엄벌을 아무리 크게 외쳐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든지 현상을 유지해 가려는 야권의 당리당략,어떻게 해서든지 유리한 대권구도를 확보해 보려는 야권의 당리당략 앞에서 지자제는 어쩌면 또 하나의 사상 최악의 타락·과열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지자제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정당의 자제가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해져 보이는 이 시점에서 차선책은 무엇일까. 믿을 것은 유권자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결론이다. 유권자가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려서 한 표 한 표를 냉정하게 행사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지자제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축소판 국회의원이나 정당의 하수인들을 뽑는 게 아니다. 내 동네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심부름꾼을 뽑는 것이다. 정치꾼을 뽑았다가는 싸움판이나 벌이는 국회를 흉내 내다가 한세월 다 보내고 동네 살림만을 망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지자제 일꾼을 제대로 뽑기 위해서는 유권자부터 반성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입후보자들로부터 돈과 물품을 받아내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시 한 것이 이 나라 성거풍토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돈을 쓰든 말든 정당에 가입했든 안 했든 간에,가장 정직하고 유능한 일꾼을 고르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래가 정말 국민의 선택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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