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패배자는 언론이었다”/미·이라크 당국 발표내용 그대로 전달/검열 거친 사실뒤의 숨은 진실은 외면걸프전은 역사상 어느 전쟁보다도 철저한 정보조작과 언론통제가 이뤄져 심지어는 「거짓말투성이 전쟁」으로까지 불린다. 최초의 「유럽신문」을 표방하고 있는 유러피언지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미하엘·위르구스는 최근호 칼럼에서 전쟁당사국들과 언론을 신랄히 비판,이번 전쟁과 언론보도의 평가에 유용한 시사와 자성을 안겨주고 있다. 「미디어전쟁의 인간무기들」이란 제목의 이 칼럼을 요약,소개한다.
저질기자들은 전시에 애국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자들은 전쟁중 애국자가 될 수 없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보도에 있다. 이는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는 사실을 보도할 때 달성된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진실여부를 천착할 수 없는 사실을 보도해서는 진실보도라고 할 수 없다.
걸프전에서 우리 기자들은 바그다드방공호에서 불에 탄 참혹한 시체들이 꺼내지는 장면을 담은 TV화면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 화면에 담긴 진실은 무엇인가. 논쟁의 여지없는 유일한 사실은 「참혹한 죽음」이란 것뿐이다. 이것이 미국의 주장대로 사담·후세인의 악랄한 전쟁수행수법의 결과인지,아니면 미 공군의 치명적 실수였는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후세인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 여부를 우리는 모른다. 어떤 기자도 이를 목격하지 못했다.
이번 전쟁의 당사자들은 모두 각자의 선전목적에 맞는 사실만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언론 동맹」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군이 안내하는 대열에 끼지 않으면 신변보장을 할 수 없다는 위협을 받았던 기자들은 이번 전쟁의 「최초 패배자」였다. 기자들은 기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특히 TV보도들은 「유혈지옥」보다는 비디오게임을 연상케 하는 생소한 군사용어와 표현들을 그대로 복창했다. 인명살상을 「부수적 피해」로 치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전쟁이 있기 전까지 TV의 검열받지 않은 생생한 보도는 경탄을 불러일으켰었다. 천안문에서의 학살만행을 전한 TV보도는 전세계의 규탄을 촉발했고 서방세계는 이들 자유언론을 칭송했었다.
동구권의 민중봉기상황을 전세계에 있는 그대로 전파,공산독재붕괴에 큰 역할을 한 서방언론에 찬사가 쏟아졌었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이번 전쟁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다. 언론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순화됐었다. 기자들은 단지 미디어전쟁의 「인간무기」로서 필요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숨기고자 하는 사실을 밝혀내는 「제4부」로서의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들도 스스로 이용당하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극소수만이 검열받은 사진과 「애국적 시각」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밝혀냈을 뿐이다.
특히 그 극소수 진실도 TV화면이나 대형사진이 아니라 신문·잡지의 작은 활자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다.
전쟁 개막 후 첫 주의 「신기함」이 지나간 후 흥미를 잃은 사람들은 「지상전」이란 재미있는 제2부 상영을 기다리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택해 전쟁의 공포로부터 탈출했다. 「세상이여 멈춰라,나는 내려야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군장성들이 외과의사와 같은 끔찍한 용어를 구사하는 현실을 보고 듣는 것보다는 공포영화의 가짜피를 보는 것이 훨씬 견디기가 나았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도피주의 관객들은 다음날 아침 신문을 읽었다. 최신뉴스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열된 TV보도에 없는 배경해설을 보기 위해서였다. TV시청률이 떨어진 반면 활자매체의 판매는 증가했었다. 사람들은 TV화면이 아닌 기사와 그 행간에서 진실을 찾으려 했었다.
물론 용감하고 비판적인 정직한 기자들을 칭송하자는 것이 이 글의 의도는 아니다. 언론에는 거짓말쟁이 비겁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기사와 보도를 흔히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믿기에 그들은 더욱 위험한 부류들이다. 그러나 역시 자유로운 기자들이 있기에 발전과 변화,그리고 진실이 있는 것이다.
기자가 훌륭한 애국자일 필요는 없다.
또 이들이 전쟁을 이겨야 할 의무도 없다. 기자는 다만 아무리 참혹한 진실도 상세히 묘사,전달해야 한다. 기자가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스스로 용인한다면 더 이상 기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번 전쟁종식과 함께 많은 가슴아픈 기사들이 쓰여야 할 것이다. 그 중 한 가지는 언론 자신에 관한 스스로의 반성이다. 그리고 이 기사들은 우리 언론인 자신들에게 결코 자랑스런 내용이 될 수 없다.<베를린=강병태 특파원>베를린=강병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