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스라엘·이란 관계개선/「중동 재편」 영향력 확보 노력/미 패권주의 계속땐 개혁·민주화정책 후퇴 우려승전무드에 들떠 있는 미국에서도 이번 걸프전을 「최악의 시기」에 「잘못된 명분」으로 벌인 전쟁이라는 주장이 지식인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의 최우선 관심대상은 소련이지 결코 이라크가 아니며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소련의 민주화와 개혁에 서방이 지원을 할 때에 오히려 막대한 전비를 들여 자그마한 쿠웨이트를 해방한 것은 미국의 정책판단의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이같은 소련이 발트3국의 독립운동을 유혈진압하는 등 페레스트로이카가 후퇴하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이 「패권주의」를 앞세울 경우 소련은 보수 쪽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신데탕트 체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뜻이다.
이같은 견해를 반영이라도 하듯 소련 군부 등 보수파들은 동구에 대한 주도권 포기와 군축협상의 양보로 얻은 대가는 전혀 없었으며 중동에서마저 영향력을 상실,안보에까지 위협을 초래케 했다고 고르바초프셰바르드나제의 신사고외교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소련은 그 동안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신사고외교정책으로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세계를 신데탕트체제로 구축하는 등 세계질서 재편에 주도권을 발휘했다.
실제 유럽과 아시아에서 대규모 철군을 감행하고 한국 등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소위 세계 신질서의 「지도자적 위치」를 굳혀왔다.
또 중동에서도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재개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사우디 등 온건아랍국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면서 시리아 PLO 등 친소 국가들과의 유대도 공고히 하는 등 탈냉전시대에 맞는 포괄적인 중동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동서관계의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듯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소련은 자신들이 추구하려는 「국제적 질서」에 배치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소련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보조를 맞춰 유엔의 무력사용 결의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라크의 행동은 소련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미국 등 서방으로 넘겨주는 계기가 됐다.
이라크의 패배는 강건너 불을 보듯 분명했으나 국내정치의 보수화와 개혁세력의 퇴진 등으로 코너에 몰린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평화중재 노력을 하도록 강요했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소련의 굳건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주요무기 수입고객인 동시에 석유까지 충분하게 매장돼 있어 이라크의 완전한 패배는 소련의 영향력 쇠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소련의 평화중재 노력은 실패했으며 이라크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고 군사소국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세계 신질서 구축에 소련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가 과제로 남는다.
우선 중동에서 소련의 이해관계는 미국과 상반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련은 과거의 동지인 이라크를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역강자로 부상한 이란이나 이스라엘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소련은 중동에서의 자국이 추구하는 이익을 대변키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도리밖에 없으며 이란과도 새로운 관계개선을 모색해야 될 것이다.
소련은 PLO와 아랍 과격세력을 의식,이스라엘을 인정치 않았으나 「중동평화회담」의 절대적 변수인 이스라엘이 배제된 환경에서는 중동의 신질서 구축이 공염불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이란도 비록 자국의 세력하에 두기는 어렵더라도 미 주도의 「신아랍동맹」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다.
원유생산량 감소와 외화수입 부족 등 소련의 현실정을 감안할 때 중동은 무기 수출대상이 되는 만큼결코 이라크의 군사적 패배에 영향을 받아 외교적 이니셔티브까지 놓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미국이 중동 신질서 구축에 이스라엘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소련 역시 오랜 동맹국인 시리아를 통한 영향력을 발휘,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 비록 소련은 국내정치 불안정과 경제적 파탄 속에서 미국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지라도 콜린·파월 미 합참의장이 지적했듯이 미국을 30분 안에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소련은 따라서 신데탕트체제에서 미국의 파트너임에는 분명하고 당분간 미소 협력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이 일방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경우 소련의 민주화와 개혁은 경직될 수밖에 없으며 화해무드에 손상을 끼칠 수도 있다.
소련은 전처럼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는 않을 것이지만 자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질서」에 쉽게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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