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지방의회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다. 유권자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다는 점은 동일하나 기능이나 성격은 판이하다. 국회는 전체국민을 대표하여 국정 전반에 관련된 각종 입법 예산을 다루는 정치의 본산이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쓰레기처리에서부터 수도 교량 환경 교육에 이르기까지 조그마한 지역사업을 논의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들처럼 세비를 받지 않으며 면책특권도 없다. 순수한 주민자치기구를 운영하는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자리이다.특히 광역(특별시 도)보다 좁고 작은 기초단위(시군구)에서는 사소한 지역문제를 오순도순 얘기하는 곳이 의회이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주민의 일상생활에 관한 사항들을 토론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의회의 규모도 작을 경우 10명이 안 되는 곳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국회와 같은 정치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기초의회선거에서는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것을 금지키로 한 것이다. 쓰레기 처리와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데 무슨 거창한 정치가 필요하며 정당이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시군구 의회 선거가 예고되자 각 정당에서는 지금 정치탈색의 취지를 잊고 「정치의 주역은 정당」이라면서 적극 개입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선거라고 하니까 무조건 정당이 적극 참여해야 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야가 대중집회를 열어 서로를 공격하고 비판해서 어느 정당이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심판받는 자리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당에서 내세운 후보도 없는데 무엇으로 심판을 받겠다는 것인가. 선거라는 이름이 붙으니까 무턱대고 정당끼리 싸움하는 정치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여야가 혈전을 벌이는 대통령선거가 국회의원선거쯤으로 알고 있다면 착오도 이만저만 아니다.
여야 각 정당은 내부적으로 자당 인사를 공천하거나 당원단합대회라는 편법을 이용하여 특정 후보를 지원하거나 상대당을 헐뜯고 자기 당을 홍보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30년 만에 부활되는 지자제의 첫 선거를 깨끗하게 치르기 위해서도 정당은 완전히 손을 떼는 게 좋다. 그런 식으로 정당이 개입하면 이번 선거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 정당이 적극 나서면 분위기가 과열되게 마련이고 그러다가 보면 선거는 우리가 염려하던 혼탁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 동안 기존 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왔다면 또 모르겠으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실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 동안 숱하게 국민을 괴롭혀온 과거를 뉘우치는 의미에서라도 제발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기존 정당은 이번 선거의 주체가 아니다. 가능한 멀리 떨어져 주었으면 좋겠고 순수한 주민자치가 될 수 있도록 평범한 유권자의 차원에서 관심있게 지켜봐주는 것으로 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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