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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줘 탈이다(사설)

입력
199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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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했던 범죄와의 전쟁소리가 어느새 뚝 그쳤다. 한동안 긴장감이 감돌았던 우리 사회의 범죄추방 분위기에도 최근 금이 가고 있다는 인상이 역력하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수서·뇌물외유·예체능계 입시부정 등의 대형부정·비리사건의 수습에 당국의 관심이 온통 쏠려 왔던데다 중요한 지자제선거까지 다가오고 있어 그쪽으로 치안수요가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돼 더욱 여력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하지만 유례없는 부정사건 빈발이 일반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를 안겨주어 자칫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기강해이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고,지자제선거의 과열·타락상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때이다. 이미 수서사건 여파로 공무원들의 민원처리 늑장사태가 빚어지는가 하면 한동안 잠잠했던 야간 유흥업소의 변태영업 등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는 소리인 것이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범죄전쟁 수행 두 달간의 여론결과를 조사·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퍽 시사적이다. 전국 6대 도시의 남녀 6백명에 대한 조사결과 범죄전쟁 개시 후의 치안상태에 대해 81.3%가 「매우 불안」 또는 「약간 불안」하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범죄전쟁선포 후의 민생치안 상황변화에 대해서도 70%가 호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나머지 중 24.8%만 호전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검거실적 부진보다는 검거된 자에 대해 처벌이 미약한 데 대해 더욱 큰 불만을 나타냈고,75.8%가 범죄전쟁의 지속적 수행을,60.7%는 현재보다 더욱 강력히 수행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바로 엊그제 이같은 국민적 불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죄전쟁으로 구속됐던 조직폭력단 서방파의 두목급이 서울형사지법에서의 이례적인 집행유예선고로 석방되었다. 각종 이권에 개입,부하들을 동원해 집단폭력을 행사해온 전과 15범의 조직폭력 두목을 개전의 정과 피해자 합의를 내세워 풀어준 것이다.

아무리 재판이 사법부 고유의 권한이라지만 결과적으로 범죄와의 전쟁의지를 퇴색시키고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치안본부가 최근 호텔 오락실 불법허가혐의로 경찰간부 3명의 비위를 조사하는 것을 비롯,전체 경찰관에 대한 조사에 나서고 있는 것도 기강확립을 위해 바람직한 조치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범죄전쟁 수행 5개월도 못돼 벌써 경찰관들이 의지나 긴장이 풀린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아울러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음도 당국은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두루 불안하다. 시작은 있고 끝맺음은 없는 듯한 범죄전쟁소리의 실종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고,각종 비리·정치싸움·각종 연대투쟁 등으로 더욱 가속화될 조짐의 사회혼란에 깊은 좌절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이럴 때일수록 범죄와의 전쟁을 중단없이 수행해야 한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예비군의 방범투입 같은 대증요법보다 총 치안능력을 중단없이 극대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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