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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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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봉 국무총리는 말을 잘하는 것 같았다. 연설대에 서서 연설문을 낭독할 때는 머뭇거리기도 하고 더듬기도 해 눌변인 것처럼 보였다. 하나 막상 테이블에 앉아 토론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는 그렇게 논리적이고 능변이어서,듣는 이들은 설득시킬 만했다. 5일 하오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일문일답에 대응하는 노 총리를 보고 느낀 첫번째 인상이다. ◆두 번째 소감은 소신이 뚜렷해 보였다는 점이다. 아직도 서부 경남 사투리가 남아 있고,그만한 지성과 그만한 지위에 걸맞는다고 할 수 없는 덜 세련돼 보이는 말투를 쓰기는 했지만,「그렇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그의 소신은 관직에 연연하는 관리 출신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면이었다. ◆학계에서 청와대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총리로 발탁된 것은 그 돋보이는 소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능변가나 다변가가 자기 말에 휘말리기 쉽다는 점이 노 총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구나 싶은 대목이 더러 있었다. 질문이 예리하지 못했던 탓일까. 아니면 자기 논리에 너무 충실하다보니 피할 수 없었던 현상일까. ◆노 총리는 그날 스스로 논리 모순을 일으키는 말을 몇 번인가 했다. 권력의 비집중화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끝에 가서 총리가 모든 권한을 휘둘러대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일까. 교육체제 개혁도 직접 지휘하겠고 토지정책·대중교통문제 해결도 직접 지시해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했다. 장관들이 알아서 할일을 그렇게 총리가 모두 총괄하는 것이 권력이나 권한의 비집중화란 말인가. ◆현대 사회에 걸맞는 인간상을 위해 노 총리는 국민들의 정서함양을 강조했다. 60∼80년대에 너무 바쁘게 앞만 보고 살다보니 여유가 없어 메말라지고 삭막해졌다고 원인분석까지 했다. 그리고서는 4년제 대학을 2년 만에 졸업케 하는 대학교육체제 개혁을 논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학점만 따면 졸업하는 게 대학이라면 총리가 말한 국민정서함양교육을 언제 충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총리도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솔직성을 보여줬다면 그날의 토론은 더 성공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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