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비 20% 부담 불구 전후 논의등서 소외/“미 눈치만 본 결과” 분통/「독자외교」 고개 들기도걸프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세계 속의 일본」의 지위가 너무 초라하다는 현실을 일깨워준 이벤트였다.
서방 7개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이번 전쟁에 20%의 전비를 부담한 일본이 전후 세계질서 재편논의 같은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외톨이 신세가 서운하다 못해 야속하기만 한 것이다.
일본의 한 신문은 부시 미 대통령이 「포스트 걸프전」의 국제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캐나다 영국 프랑스의 수뇌들과 연속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도하면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일본 만이 제외된 셈』이라고 푸념했다.
종전뉴스가 전해지던 날 동경의 증권시장은 일시에 폭등세를 나타냈었다. 그중에서도 건설·금융업종의 상승폭이 더 컸다. 전후복구사업에 참여해 오일 머니를 벌어들일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또 경제계를 중심으로 활발한 사업참여 논의가 즉각 개시됐다.
그러나 쿠웨이트정부가 전후복구사업을 미국 영국 등 해방의 은인국들에만 특전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복구사업에 관한 논의는 뜸해졌다.
사실 일본의 집권 자민당과 정부는 일찍이 이같은 상황을 예견,『걸프전쟁에 인적인 면에서도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과 여론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전후 평화유지활동(PKO)에라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명당과 민사당의 협조를 얻어 민간중심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데는 합의됐으나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문민」 중심으로 한다던 새 조직에 예비 자위대원을 포함시켜 정전감시 업무같은 군사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속셈을 드러내 공명당측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 수송기 5대를 보내 피란민을 수송하겠다고 특별시행령을 제정하기까지 했으나 『안보내도 좋다』는 부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보류상태에 있다. 90억달러 추가지원을 위한 90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은 지난 5일에야 참의원을 통과해 겨우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이토록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도 어느 것 한가지 낙착시킨 것 없이 꾸물대기만 한 지도층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자 일본정부는 안팎 곱사등이가 된 꼴이다. 신문 잡지들은 연일 『일본정부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고,할 수도 없으며,말도 할 수 없는 3중고에 허덕이고 있다』고 비꼬면서 가이후(해부준수) 총리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하고 있다. 미국의 눈치만 보면서 이라크 본토 진격까지 전면지지한 것은 정치철학 부재의 결과라는 것이다.
걸프전쟁 전비의 20%에 달하는 1백30억달러를 내고서도 정치적으로 그에 합당한 대접을 못받는 것은 물론 전후복구 사업에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미국 일변도 외교의 참담한 업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독자외교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도 그런 불만의 반증이다. 일본은 89년까지만 해도 쿠웨이트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66%를 수주했었다. 그런데 쿠웨이트 해방에 엄청난 돈을 제공하고도 단 한건의 복구사업을 따지 못한 것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종전 직후 쿠웨이트정부는 전기·수도·전화 등 긴급복구사업 90일분을 미군 공병대에 위탁했는데,미군측은 이 공사를 미국기업 12개사,영국 사우디아라비아 각 10개사,프랑스 2개사,쿠웨이트 키프로스 각 1개사에 나누어 주었을 뿐 일본을 배척한 사실을 두고 하는 소리이다.
거기다 미국이 앞으로 걸프지역 재건과 석유공급안정책을 강구하기 위해 일본과 독일에 더 많은 자금제공을 요청하고 있어 불만은 더욱 끓어 오르게 됐다.
종전 직후 일본정부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전후처리를 위한 인도적 배려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미국은 『원유가격 안정을 위해 국제석유비축기구를 만들어야겠다』면서 일본과 독일에 필요경비의 상당액을 요구할 태세인 것이다.
걸프전쟁에 대한 기여가 불충분했다는 것을 빌미로 미국이 돈드는 일은 모두 두 나라에 떠맡길 속셈임을 간파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가 요술방망이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동경=문창재 특파원>동경=문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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