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지분」 불구 주도권 상실/참전에 부담감… 「팔」 해결 앞장걸프전쟁에서 이라크는 사담·후세인이란 한 지도자의 오판으로 수십만 톤의 폭탄세례를 받고 복구에만도 수십 년이 걸릴 정도로 쑥밭이 돼 버렸다.
돌이켜 보면 미국이 과잉대응을 정당화하기 위해 「2류」에 지나지 않는 이라크 군사력을 세계 4위규모라고 정보를 왜곡·조장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라크는 「2류」에 지나지 않는 군사력을 가지고 쿠웨이트를 집어삼키는 「정글의 논리」를 추구했으나 미국 등 세계 열강들은 이를 막강한 힘의 바탕으로 「법의 지배」로 바꾸어 놓으려는 「외과적 수술」을 감행함으로써 이라크에 처참한 패배를 안긴 것이다.
이제 잿더미로 변한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바스라에서 어떤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될 것인가.
프랑스 언론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과연 쿠웨이트를 위해 죽어야 했는가」 「미국 등 이기적인 동맹국과 이스라엘 등을 위해 힘을 보태야 했는가」 「프랑스가 반이라크 동맹이란 열차의 마지막 칸에 탄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는가」 「걸프전은 신식민주의의 악취가 아닌가」 등등….
다행히 프랑스는 참전한 군인 1만2천명 가운데 2명만이 전사했으나 그렇다고 이런 질문은 사라진 게 아니다.
프랑스도 냉전 종식 후의 세계질서가 국지적인 정치폭력에 의해 개막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를 공유,사담·후세인이 쿠웨이트란 먹이를 토해내도록 하는 편에 섰다.
그러나 걸프전쟁은 세계 신질서 구축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 망정,충분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전쟁발발 직전까지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드골주의 외교는 동과 서,남과 북을 연결함으로써 유리한 입장을 택하는 것이나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전쟁에서는 주변적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걸프전에서 신질서 구축의 주도;자인 미국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야만 했던 상황임을 감안할 때 애당초 일정한 「패배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야간공격이 불가능한 재규어기를 파견했고 폭격의 쿠웨이트국한설과 그에 따른 슈베느망 국방장관의 사임,생화학무기 불사용선언 등 나름대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다른 참전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영국은 프랑스의 이같은 유보적 자세를 비판하면서 걸프전은 앵글로색슨 주도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페만지역에 파견된 50만 대군의 미군은 이라크군의 격퇴에 충분한 것이며 기타국가의 참전은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프랑스는 판단하고 있다.
영국은 3만5천명을 파견,석유부인 1천억달러의 쿠웨이트 재산이 런던에서 관리되는 사회적 이익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와는 다르다.
결국 프랑스는 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의 질서재편에 결정권을 행사하고 걸프전 후 미국의 독주에 영향력 행사를 위해 걸프전에 참가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이제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으로 아랍권과 가장 친밀한 서방국으로서 「아랍의 모멸」을 치유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는 후세인이 철군 조건으로 내세웠던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뒤마 외무장관은 최근 미국을 방문,중동평화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미국이 후세인을 「독재자」로 규탄하면서 유엔 결의안을 집행한 것처럼 팔레스타인문제의 해결에도 열의를 보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는 자국의 페만 파견군을 오는 가을까지 모두 철수하겠다고 밝혀 반영구적인 주둔을 꾀하려는 미국과 대조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군의 파병이 자칫 「용병」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지,아니면 감당할 경제력이 있기 때문인지 걸프전비를 다른 국가에 요구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또한 이번 걸프전에서 전쟁보도를 선권한 미국의 정보지배에 대항키 위해 미 CNN TV와 같은 뉴스전문매체의 「유럽판」 창설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미국과는 달리 냉전종식 후의 첫 열전인 걸프전에 대한 평가를 아직 명확히 드러내놓고 있지 않지만 이 전쟁을 「아랍·서방의 대결구도」로 보며 후세인의 장래운명이 어떻든간에 장기적으로 그를 아랍의 「승리자」로 부각시킬 것이라는 평가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미국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문제를 이번 쿠웨이트 해방에서의 열정으로 해결치 않을 때 역사는 걸프전쟁의 평가를 달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프랑스는 걸프전쟁에 참가한 같은 서방국가이면서도 미국·영국과는 다른 독특하고 미묘한 「제3의 입장」에서 걸프전을 치렀고 그 후를 내다보고 있다.<파리=김영환 특파원>파리=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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