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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권력은 자멸한다/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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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권력은 자멸한다/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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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겨울 함경도 땅 개마고원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미 해병대의 한 상사가 눈 구덩이에서 얼음 덩어리 하나를 끌어냈다.중공군 병사였다. 대대장인 레이먼드·데이비스 중령이 『죽었느냐?』고 물었다. 상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눈알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녹스저 「한국전쟁」). 천으로 만든 군화를 신고 황급하게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은 식량은 물론,무전기나 야포·탄약·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 정확한 것은 아직도 알 수 없지만,아마도 90만명의 중공군이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전쟁은 그처럼 참혹하다. 한국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통틀어 「1백만 이상」이라고도 하고,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2백90만」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독재의 마지막 성전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이 시작한 전쟁도 참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두더쥐 처럼 사막의 벙커에 꽁꽁 숨었던 이라크군 15만명이 죽었다고 했다(미 NBC방송 보도). 17만이 넘는 이라크의 젊은이들이 손을 들고 포로가 됐고,무고한 민간인도 1만명 이상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름을 퍼 올려 긁어 모은 돈으로 사들인 억만금의 탱크와 장갑차와 대포들은 이제 즐펀한 사막 위에 흉물스런 시체처럼 고철이 돼 널려있다. 국가의 산업시설은 결딴나 사람들은 굶주린 채 촛불 아래서 두리번 거리고 있다.

후세인 독재 22년에 철석처럼 약속했던 영광과 정의는 온데 간데 없게 됐다. 국토는 폐허가 된 꼴이요,1천9백만 백성들은 혈육의 참혹한 죽음과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좌절과 치욕을 감내해야 할 판이다.

후세인은 이미 이란과의 소득없는 8년 전쟁에 20만명의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쳤고,석유 노다지를 탕진하고도 8백억달러가 넘는 빚쟁이 신세가 됐었다.

후세인은 알라신의 이름으로 「이웃 형제국」을 짓밟은 데서부터 전쟁의 철부지 불장난을 서슴지 않기까지 「해서는 안될 일」만 골라서 했다. 무고한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두고,포로로 잡힌 다국적군기 조종사들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바다에 엄청난 기름을 퍼붓고,쿠웨이트에 있는 수백 개의 유정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세계 4위를 자랑하던 그의 군사력이 사막의 고철더미로 변하는 데에는 6주일이 걸렸을 뿐이다. 땅속의 벙커는 그대로 무덤이 되고,믿었던 스커드미사일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독재자는 누가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후세인은 백성을 그런 처참한 지경에 몰아넣고도 『이라크군이 승리를 거뒀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 독재의 말로는 결국 「거짓말」이요,속임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이 남긴 교훈

세상사람들은 고양이가 쥐 다루 듯 다국적군이 일방적 게임을 즐겼던 이번 전쟁을 「후세인의 오판」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후세인은 「2류급 군사강국」이 미국같은 초강대국 앞에서는 「종이 호랑이」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치 못했었다. 그것은 「권력의 오만」에서 온 것일수도 있고,또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든 불장난일 수도 있다.

또한 철통같은 권력의 아성에 눌러 앉아 있었던 그는 그의 병사들이 줄줄이 손을 들고 「악마의 군대」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는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전쟁은 패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몰랐을 것이다. 『덕이 있는 자는 적대할 수 없다(유덕불가적』(춘추좌전)든가,『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곧아야 한다(사정)』 (역경)는 인류의 오랜 체험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어쨌든 전쟁은 끝났다. 내친 김에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를 비롯한 세계 통상문제에 압력을 더할 것이라는 걱정의 소리도 들리고 있다. 막대한 전쟁비용의 80%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일본 독일 등 「남의 돈」으로 치른 미국으로서는,미끄럼틀 타 듯 주저앉은 경제에 이번 전쟁이 별 도움을 주지못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다만 기름값이 안정돼 세계의 산업생산과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로서도 큰 돈 안들이고 이번 전쟁에서 몇가지 귀중한 체험을 한 셈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훈을 배운 것이 북한이요,김일성일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는 무기체계가 같고,땅굴 전술 등 전략체제가 비슷하다. 또 「성전」의 이름 아래 동족이나 이웃 형제 나라를 짓밟은 전쟁체제가 같다. 진 전쟁을 이겼다고 우기는 것까지 닮았다. 그러나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다. 권력은 오만하면 자멸한다는 경고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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