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히로히토(유인) 전 일왕을 닮은 쉰 목소리로 다국적군에게 항복을 선언한 지 4일로 1주일이 됐다.며칠 전부터 후세인의 망명설이 나돌더니 이제는 이라크 유일의 항구도시 바스라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게다가 이라크군이 반후세인 시위에 가담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일부 서방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다루면서 후세인의 실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후세인 망명설과 반정부 소요에 대한 미확인 보도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배경을 깔고 있다. 뒷감당도 못할 전쟁을 벌여놓고는 패배가 불보듯 뻔해지자 어거지 논리를 방패삼아 줄행랑을 치고 말았으니 이러고도 후세인이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서방측의 기대섞인 분석인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후세인의 실각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성과도 없이 너무도 커다란 희생을 치렀기 때문이다. 사망자만 12만5천명에 포로가 17만명. 여기에 부상당한 민간인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아랍사정에 정통한 이곳 요르단사람들은 후세인이 그렇게 호락호락 권좌에서 밀려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또 설사 사담·후세인이 권력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집권당인 바트당의 통치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여 년이 넘도록 후세인을 받쳐온 두 기둥인 이라크군과 바트당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조짐이 아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후세인에 대한 대다수 이라크인들의 지지도도 전쟁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이곳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후세인에 대한 여타 아랍인들의 인기도 여전하다. 암만시내에 있는 이라크대사관 앞에는 사담·후세인의 걸프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암만시민들이 보내온 화환이 줄지어 서 있다.
이처럼 대부분 아랍인들은 이번 전쟁의 결과를 자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담·후세인의 앞날을 속단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운명을 맞든 간에 아랍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데 한몫을 담당했던 우리로서는 앞으로 그들의 말없는 분노를 삭혀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후 중동정책을 수행할 담당자들이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암만에서>암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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