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 침입흔적 없어… 천장엔 식량봉지/당장 사용가능… 태극기는 며칠전 군인들이/한국기자에 환영 대단 “복구에 한국 동참을”해방된 쿠웨이트시 주재 한국대사관 옥상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2일 하오 이곳을 찾은 기자를 반겨주었다.
지난해 8월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따라 잠정업무를 중단,공관원이 모두 철수한 지 6개월여. 라우다구 10가에 자리잡은 공관의정원은 웃자라난 잡초와 시든 나무들,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로 황량해 보였지만 지하 1층 지상 3층의 아담한 공관건물은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가능한 것처럼 온전했고,하루빨리 공관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 대사관」이라 쓰여진 현판도 그대로며 담벼락 어느 한 군데 탄흔이나 파괴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공관담벽을 끼고 지어진 주차장내의 차량들은 쿠웨이트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이 뜯겨 나간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담을 넘어 들어간 건물 내부에도 이라크군이 칩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혹시 이라크측이 가설한 지뢰,부비트랩이 설치돼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 속에 한층 한층을 살펴봤지만 각 방문은 굳게 잠겨 있고 대사부속실의 전화·팩스기도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영사과가 위치한 부속건물 역시 문이 걸려있는 채 말짱했다. 이보다 더 반가운 사실은 쿠웨이트에 잔류해 있던 한국인 9명 전원이 무사하다는 소식이다. 공관경비실 창문에는 『재쿠웨이트 한국인 9명 모두 무사하오며 매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1시까지 이곳에 모입니다. 91학년 2월28일』이라고 적힌 메모가 부착돼 있었다.
전화·통신수단이 모두 두절된 쿠웨이트에서 대사관을 기점으로 고국과의 연결을 애타게 기대하는 심정이 가득했다. 기자는 시간관계상 『다음 번에 소식을 알리겠다』는 간단한 쪽지만 남겨놓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경비실 뒤켠에는 이라크군이 엉성하게 지어놓은 막사가 있었다. 다마스쿠스로 건너 대사관과 마주보이는 건물에 이라크의 한 군사령부가 위치해 있었으며 공관으로부터 30m 떨어진 하늘색 3층 주택은 탄약고로 쓰여 경비요원들이 이곳을 숙소로 사용했다고 대사관 이웃 주민들은 밝혔다.
이들이 사용한 막사 안에는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으며 감자·양파 등 식량을 봉지에 담아 천장에 매달아 놓은 게 그대로 있었다. 잔류품 중에는 「사담」이란 상표가 부착된 이라크제 면도용 크림튜브도 있다.
한국기자에 대한 주민들의 환대는 대단했다.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껴안는 이웃 반이잘씨(55)는 부인과 딸 세자매를 서둘러 밖으로 불러내오며 『한국인이 돌아왔다』고 반겼다.
파이잘씨의 조카인 야쿱·알·압둘잘릴씨(38)는 누가 대사관에 태극기를 게양했는가 하는 기자의 궁금증에 대해 『이틀 전 일단의 군인들이 와 국기를 달았다. 하지만 소속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요르단 암만 주재 영사를 지낸 외교관 압둘잘릴씨는 대사관 건물 소유주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공관 직원들이 빨리 돌아와 쿠웨이트 복구작업에 합심해 동참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만대사관 앞에는 국기게양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GCC(걸프협력위) 군으로 참가한 오만군이 도열한 가운데 국가의 연주와 함께 올라가는 오만국기를 보며 웬지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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