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과소비로 한 동안 너무 풀어 놓았던 허리띠를 걸프전쟁을 계기로 죌 수 있었음은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정부의 권장과 국민의 자각이 일치하여 거둔 성과라고 할 것이다.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그러했다. 수요급증에 따른 부담을 새삼 깨달아 절약정신을 북돋우는 건전 소비행태가 그런대로 넓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걸프전쟁과 무관하게 그대로 정착됨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예상을 앞지른 종전과 더불어 현실은 크게 빗나가고 있다. 마치 승전에 도취한 듯,일찍 긴장을 풀어헤치고 해이감과 낭비성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과소비의 온상은 여전하다. 이번에도 손꼽히고 지적되는 곳은 고급 의상을 취급하는 패션가 등 호화 사치업소와 일부 백화점 그리고 불야성을 이루는 환락가이다. 종전 이전에도 유흥가에선 심야영업금지를 무시하고 네온사인을 켠 채 변태영업을 계속 하기도 하였다.
발등에 뜨거운 불이 떨어질 때만 깜짝 놀라는 구태의 악습은 이 기회에 철저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 걸프전쟁이 끝났다고 갑자기 호경기가 오는 것이 아니다. 물가불안이 가중되고 수출전망도 흐린 마당에 흥청거릴 여유가 있을 까닭이 없다. 전력수급 사정 또한 대폭적인 증설이 시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에너지절약 말고 무역수지의 적자를 줄이기가 막막하다.
정부는 차량 10부제 운행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절감과 소통 원활의 일석이조의 효과를 살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한집 한등끄기부터 호화조명과 네온사인의 규제도 지속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국민여론도 에너지 소비억제 정책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공보처 의뢰로 조사한 여론은 차량10부제 운행에 크게 호응을 보였고 TV방영시간의 단축도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 가로등 격등제나 전광판 사용금지 조치의 해제에도 반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에너지 절약은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스스로 앞장서 나가야 한다. 수서사건으로 흐트러진 공직의 기강이 에너지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쳐 물렁거리는 일이 있으면 결단코 용인할 수 없다. 일부층의 눈치를 살펴 느슨해지면 결국 허리띠는 바지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꼴이 되고 만다.
아울러 국민의 참여도 냉각되는 일이 없도록 자기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나와는 무관하다든가 하는 생각이 혹시 생긴다면 절약의 기조는 무너지고 만다. 그 피해는 낭비한 사람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감당하게 된다.
최소의 소비는 불가피하나,과소비는 평상시와 비상시나 마찬가지로 없어야 할 악덕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아낄 때이지 마구 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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