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쟁은 다국적군측과 패전 이라크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됨으로써 전후처리의 실무작업 단계에 들어가게 됐다. 여기에서 세계는 다국적군의 결정적 승리로 끝난 이 전쟁이 탈 냉전시대 국제질서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둘러싸고 드러나게 또는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줄다리기와 논쟁이 한창이다.얼핏 보기에 이번 전쟁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서방측에 도전자 없는 승자의 자리를 마련해준 결과가 됐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형식상 유엔의 깃발 아래 「지역강국」의 불법침략에 철퇴를 가하는 데 성공한 탈 냉전시대 최초의 집단안보의 선례라는 뜻이 있다. 다국적군의 주축이 미국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그러나 다국적군은 탈냉전 시대답게 소련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과거 냉전시대에 강대국의 선전 무대에 지나지 않았던 유엔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정의와 질서」를 대표하는 국제 기구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쟁의 결과는 자칫 모처럼의 동서 화해와 협력체제에 부정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라크는 그 동안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막강한 사담·후세인의 군대는 소련의 무기체계로 무장되고,소련 군사고문관들의 기술지원 밑에 움직였다. 이라크통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 프리마코프가 사담·후세인의 정치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련의 미국·캐나다 문제연구소 코르투노프는 소련 군부가 이라크에서 미국이 차지할 우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지역의 새 질서를 다국적군의 기득권 위에서 재편하려 하고 있다면,소련은 유엔주도하에 구성해야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걸프전쟁은 결말났지만,그 전후처리는 탈냉전시대 국제질서라는 관점에서 상당한 외교적 우여곡절을 거치게 될 것은 확실하다. 협상과 논쟁이 어떤 과정을 밟건 걸프전쟁의 의미는 보편적인 정의와 질서가 집단의 힘으로 방위돼야 하고,또 방위될 수 있다는 확고한 선례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협력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쟁은 사담·후세인과 같은 전쟁광의 재현을 막아야 한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 군비축소운동은 당연히 제3세계까지 확대돼야 하고,그 성패는 역시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합의에 달렸다.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미국의 우위 속에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미국의 우위는 스스로 자제하고 자중할 때 비로소 새질서의 지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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