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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좌절감 팽배… 반미 심화(걸프전 후의 중동·세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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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좌절감 팽배… 반미 심화(걸프전 후의 중동·세계:2)

입력
1991.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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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득실떠나 민족주의 상처/「친미동맹체」 독주 견제 거셀듯아랍인들이 사담·후세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거나 최소한 심정적으로 동조한 결정적 배경은 후세인이 서방세력에 당당히 맞서 자기 주장을 폄으로써 아랍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되살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르단 수도 암만시내에서 만난 잘랄·바요르라는 청년은 『나는 사담 때문에 고개를 들고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우리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아주었다』라고 말했다. 또 알제리의 이라크지지위원회 위원장인 바치르·모메디씨는 『사담은 미국인들에게 감히 「노」라고 말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아랍대중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후세인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었던지간에 아랍인이 마음 속에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분노와 불만을 대변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한 서방의 편향된 태도,석유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중동지배기도,서방과 결탁한 소수 걸프왕정국가들의 부의 독점과 고의적 저유가정책 등이 그것이다.

아랍세계의 이같은 구조적 모순들은 이 지역이 지정학적 중요성과 석유자원 때문에 1차대전 이후 끊임없이 서구열강의 지배와 간섭을 받아온 결과이다. 때문에 아랍인은 서방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아랍의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아랍민족주의운동은 아랍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 되어왔다.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 가말·압델·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이 아랍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도 그의 정책이 아랍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랍의 민족주의운동은 각국의 이해관계,외세의 개입,민중의 의사와 어긋나는 독재정권 등 복잡한 원인 때문에 좌절과 수모만을 반복해왔다. 후세인은 이번 걸프사태에서 교묘히 아랍민족주의 논리와 회교의 언어를 차용,아랍민중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참패하고 후세인이 굴욕적인 항복을 함으로써 아랍인들은 또 한 번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됐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후세인이 정치적 승리를 얻는 결과를 막고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라크에 굴욕적인 패배를 강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따라서 이번 걸프전으로 더욱 팽배해진 아랍세계의 좌절과 패배감은 전후 중동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요르단의 아랍어 일간지인 알 더스토르지의 무에네스 라자즈 편집국장은 1·3차 중동전에서 아랍이 패배한 직후 각국에서 왕정전복과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듯이 격심한 정치소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든 지역에서 회교정통주의나 극단주의 그룹들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분석은 최근 알제리,요르단,튀니지,모로코 등에서 회교정통주의가 현정권을 위협하고 이집트에서도 격렬한 대학생 시위가 날로 확산되는 현상과도 일치하고 있다. 특히 아랍권의 반미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2차대전 후 이 지역의 지배적 세력이었지만 이번처럼 아랍국가와 정면전쟁을 벌인 적은 없었다. 특히 전쟁기간중 미국이 보여준 무차별적인 공격행위는 아랍인들이 미국을 적으로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중동지역에 확고부동한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승리는 단기적인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장차 중동지역의 안정여부는 무엇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 해결여부에 좌우될 것이라는 게 공통적 관측이다.

이미 요르단 후세인 국왕을 비롯한 아랍지도자들은 다국적군이 유엔결의안을 근거로 이라크를 응징했듯이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 철수와 팔레스타인 주권회복을 결정한 기존의 유엔결의안도 강력하게 실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문제 해결 없이는 중동의 안정은 불가능한 것이며 많은 중동전문가들은 지금이 팔레스타인문제를 해결할 결정적 호기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강력한 중재로 다국적군에 가담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화해가 이루어질 경우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문제에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요르단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자와드·아나니 요르단대 교수는 『이스라엘은 걸프전을 통해 그들이 더 이상 군사력에 의해 안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으며 다국적군에 가담한 아랍국들은 전쟁중 이스라엘이 보여준 자제로 신뢰감을 갖게 됐다』며 『이러한 양측의 이해관계로 인해 팔레스타인문제가 급속히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아나니 교수는 특히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레바논에서도 대치하고 있는 시리아가 골란고원 반환을 담보로 이스라엘과 화해를 모색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1백75만 팔레스타인들이 살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아랍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고 일부 국가간의 부분적인 해결안을 시도할 경우 아랍권은 또다시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의 안정을 위한 또 다른 과제는 친미와 친이라크국으로 분열될 아랍권의 단결을 하루속히 회복하는 길이다.

걸프전 휴전 후 요르단 등에서는 쿠웨이트,사우디 등 걸프왕정국가들이 친이라크 진영에 가담한 아랍국의 국민들에게 보복조치를 가하고 자국영토에서 쫓아낼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걸프왕정국가들은 걸프전의 여파로 국내에서 아랍민족주의나 회교정통주의 세력이 왕정전복를 시도할 것에 극심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조치를 취할 소지가 많다.

또한 걸프왕정국가들은 아랍권의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비산유 아랍국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 이후 중동질서는 미국의 의도에 따라 걸프왕정 6개국(GCC)과 이집트·시리아·터키를 축으로 한 친미그룹이 새로운 안보협력체를 구성,주도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걸프왕정국가들의 풍부한 자본과 이집트·시리아·터키의 막강한 군사력을 결합한 이 안보체제는 당분간 강력한 힘으로 중동 질서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독주를 막으려는 다른 아랍국가들의 반작용과 더욱 팽배해지는 아랍권의 민족주의운동이 친미동맹체를 계속 위협하는 불안요인이 될 것도 분명하다.<암만=배정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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