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교육부 장관께좀 묵은 얘기를 하겠습니다.
82년 3월11일 국회 문공위는 5공 대입개혁의 후유증을 놓고 꽤 열띤 정택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중 한 대목은 대학들이 전기에만 몰려 고교졸업생들의 응시기회를 부당하게 제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어떤 의원은 『대학마다 정원의 20∼30%를 유보해서 2차에 걸쳐 모집하는 방안』 또는 『종합대학이 계열별로 1∼2차를 구분하여 모집하는 방안』을 제기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전·후기 분할모집 방안입니다. 제안자는 이대순 의원,문교부 고등교육국장과 차관을 지낸 이였습니다.
이 제안은 84년부터 시행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실적은,금년(91학년의 경우,전기대의 후기분할모집이 17개대 1만5천7백68명(90학년=20개 대학 1만6천6백8명),후기대의 전기분할모집은 17개 대학 5천5백39명(90학년=17개 대학 4천7백4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후기분할모집은 줄고 전기분할모집이 늘어,전·후기모집정원은 79% 대 21%로 오히려 전기편중이 심해진 것입니다.
비슷한 묵은 얘기가 또 있습니다.
82년 10월19일자 한국일보칼럼 「일요일 아침에…」난에 『어리석은 점수따기 교육』이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필자는 서울대 사대의 정원식 교수,바로 장관의 전임 장관입니다. 이 글에서 그는 대입학력고사 성적의 「변별적 적용」을 제안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가중치적용」입니다.
이 제안은 6년을 지나 88년부터 시행이 됐습니다. 그러나 금년까지도 가중치 적용은 7개 대학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나마 신학대학 등의 특수대학,예·체능계가 많고,가중치의 비중은 모두 10%에 불과합니다. 대입선발기준을 다양화하고 개성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가중치제도의 장점은 외면을 당한 꼴입니다.
이 묵은 얘기들은 우리 대입제도가 안고 있는,그러면서도 지금껏 별로 거론되지 않았던 문제의 일면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대입제도라도 제대로 활용이 안 되면 별 소용이 없다는 것,특히 대입선발의 주체인 대학측의 적극적인 자세가 모자랄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입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의 첫 번째 안목이 대학 자율에 있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지금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내신성적+적성시험+본고사의 대입개혁안 골격은,그런 면에서 수긍할 만합니다. 이 골격은 대입지망생을 배출한 고교의 평가,이들을 맞아들일 대학 스스로의 평가,전국 공통의 보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평가(적성시험) 등을 배합한다는 점이 합리적이고,보다 다양한 평가자료를 대학에 제공하되,이들을 배합한 마지막 판단은 대학에 맡긴다는 점에서 대학자율의 근본 뜻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골격의 대입제도가 새로 생기더라도,각 대학이 공연한 서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그리하여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사실상의 「담합」을 이루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각 대학이 비슷한 비율로 내신성적과 적성시험 성적을 반영하며,같은 과목의 본고사를 같은 방법으로 치르고,비슷한 비율로 반영한다면,대학의 자율과 특성은 간 곳이 없고,응시생에게는 공연히 적성시험과 본고사의 2중부담만 지우는 결과를 빚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기우가 아님은,앞에 든 분할모집과 가중배점의 예로써 단언할 만합니다. 전기가 아니면 대학의 체면이 손상되고,분할모집이나 가중치는 대입업무를 과중하게 한다는 따위 대학측의 안이한 자세가,우수학생 유치라는 대학 스스로의 이익마저 외면하고,응시생들에게는 다양한 진학기회를 제약하는 일면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입제도를 고치는 데는 대학측의 응분한 부담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입을 위하여 학생들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제를 대입제도에만 국한한다면,새 대입제도의 골격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보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길인가를,각 대학이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모색해야 하리란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학마다 독자적인 대입제도,응시생이 보아서는 대학마다 특징적인 대입제도가 생기는 것이 대입개혁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컨대,지금 나와 있는 내신성적+적성시험+본고사의 골격만 해도 매우 다양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적성시험 한 가지만 해도,단순 합산 외에 3개 시험 영역을 선별해서 반영할 수도 있고 가중치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본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성시험과 본고사를 합치면 더 다양한 배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가령 적성시험만으로 정원의 10%,본고사만으로 10%,내신성적만으로 10%,나머지는 이들 셋을 합산하여 뽑고,여기 가산치까지 적용한다면 어떻습니까. 또 내신 성적을 40%나 반영할 것이면,숫제 부분적으로나마 추천입학제를 못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다양한 선발기준은 그것 자체로 다양한 학생을 모은다는 점에서 교육목적에 합치하는 것일 뿐 아니라,대학으로서도 이들 기준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각 대학 교육이념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응시생 쪽에서는 그 다양한 선발기준을 보아 자기 적성에 맞는 진로를 고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새 대입제도는 대학과 응시생 양쪽의 요구와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야 하고,그것은 제도 자체보다도 대학의 자율경쟁에 기초한 운용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양한 대입제도를 통한 대학 서열화의 지양과 소위 일류대학에 의한 대입 독과점상태의 타파,그리고 진학생을 위한 선택의 다양화가 그 안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교육부의 힘만으로 하루아침에 달성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착상보다는 많은 대화와 정치력을 요구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비교육전문가인 초대 교육부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자 23명을 배출한 집안에서 자라나 스스로도 대학강단에 섰고,또 회원 30만의 교총을 이끌었던 장관이라,그런 기대에 어긋남이 없을 것으로 믿어마지 않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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