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민족주의」 대부역 장애로/소도 군사력에선 초강국 불변걸프전은 42일간의 단기전으로 끝났지만 전후 세계질서 재편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련체제의 약화로 신데탕트시대의 영향력을 강화해온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신세계질서 구축에서 유일한 「대부」역을 맡을 것으로 보여진다. 소위 이 같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등장은 아랍 및 중동질서가 미국동맹국을 중심으로 이라크의 힘의 공백을 메워가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아랍민족의 좌절은 반서방 감정과 함께 불안요인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번 전쟁은 미소 관계,미EC 관계 및 경제대국인 일 독과 미국 관계에서도 강화된 미국의 발언권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걸프전 이후 세계질서의 재편을 시리즈를 통해 조명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미국은 지상전 1백시간의 대이라크 전쟁을 끝내고 중동의 평화안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부시 미 대통령은 베이커 국무장관을 내주 소련을 경유,중동에 파견해 중동국들과 전후 처리문제를 의논할 예정이다.
지난 1월29일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외교방향이 신세계질서(New World Orcler)라고 밝혔었다. 베이커 장관은 바로 이 세계질서의 첫 정책수행을 위해 중동에 파견되는 것이다.
연두교서에서는 신세계질서의 근간을 『평화와 안전,자유 그리고 법의 지배』라고 언급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4개념이야말로 다양한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 개념이며 범세계적 열망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가치개념이 어떤 틀을 갖고 걸프전 전후 처리에 좌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걸프전은 확실히 미국의 국제위상을 높여놓았다.
첫째 미국은 월남전 후 신고립주의로 빠져들고 있던 세계질서를 집단행동주의로 끌어내게 했다.
세계는 2차대전 후 일본,독일,그리고 상당한 경제대국들을 부상시켰지만 명명백백한 국제질서 파괴행위가 일어나는데도 이들은 자국의 이익에 직접 타격을 주지 않는 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또 실제로 국제질서를 안정시키거나 개선할 리더십을 가지지도 못했던 것이다.
미국은 냉전시대의 대결의 파트너였던 소련의 동의까지 얻어내면서 이라크군 징계라는 유엔 강경행동을 이끌었다.
둘째는 강국의 약소국 침략은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실례를 남겼다.
그러나 미국이 걸프전의 승리로 2차대전 이후의 양극체제(Bipolar system)를 뛰어넘어 단일체제(Unipolar system)의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가치관,미국의 법체계가 지배하는 것을 신세계질서라고 한다면 이의 달성을 위해서는 당장 부딪치는 장애물이 너무 많이 걸려 있다.
우선 중동연합국 자체이다. 중동에는 2차대전 이후 강한 아랍주의가 자라왔다. 이란의 호메이니혁명이 성공한 것도 이 아랍주의에 힘입은 것이었으며 78년의 이란 왕정 붕괴 후 좀처럼 미국세가 중동에 발을 붙이지 못했던 것도 바로 아랍민족주의 때문이었다.
전쟁중 미군기들이 바그다드시민을 폭격했을 때도 비록 정부 공식입장은 아니었으나 아랍인들은 곳곳에서 강한 반미 데모를 벌였었다. 쿠웨이트 해방 후 미군들이 다시 이라크 쪽을 향해 진격속도를 늦추지 않을 때쯤 아랍동맹국들은 상당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지금 전쟁으로 마구 부서진 걸프지역의 경제재건을 위해 지역금융기관을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이 기관은 사우디,이집트,시리아,바레인,카타르 등 아랍국들의 구체적인 동의 지원이 없으면 창설이 불가능하다.
이미 미국은 전쟁수행에도 전비조달을 일본,독일 등에 크게 힘입지 않을 수 없는 경제불황에 빠져 있다.
소련문제도 그렇다. 파월 합참의장은 전쟁 막바지시기에 미 상원 군사위에 나가 증언하면서 『소련은 이데올로기시대의 정점국은 확실히 더 이상 아니지만 지금도 군사강국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을 30분안에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미국이 걸프전 전후 질서를 재무장통제로 가려는 한 불가피하게 소련의 협력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소련은 최근 이란에 신무기 20억달러어치를 판매한 일이 있으며 이런 무기판매가 앞으로 이라크에 다시 재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베이커 국무장관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난 후 다시 중동동맹국들과 협의가 시작되면 부시 대통령의 신세계질서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어쩌면 미국은 중동에서 조속히 물러서는 것이 이 지역의 신세계질서 구축의 첩경으로 결론낼지 모른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에 뛰어들면서 『우리는 쿠웨이트가 해방되는 바로 그날 철수할 것이며 조금도 그 곳에 더 머물러 있을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도 중동을 둘러싸고 있는 긴장요소는 미국이 중재해 풀기에는 너무 깊고 복잡하다.
이번 걸프전중 시리아와 터키는 같은 다국적군에 들어와 있었지만 쿠르드족문제,국경문제 등으로 전쟁중에도 서로 비난성명을 낼 정도였으며,팔레스타인문제 역시 미국이 걸프전에 승리한 국가라는 이유로 이 문제를 보다 확실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는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사우디,이집트,시리아,터키 등의 이슬람국들을 전쟁동맹관계까지 맺어 이들이 이스라엘과 협상하는 데 상당한 거리단축을 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만일 전쟁승리국으로 까다로운 중동문제에 개입자로 들어간다면 오히려 문제해결에 역효과를 내게 할 가능성이 크다.<워싱턴=정일화 특파원>워싱턴=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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