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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의 마지막 잔치/철거 불안속 주민 한마당(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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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의 마지막 잔치/철거 불안속 주민 한마당(등대)

입력
199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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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인 1일 하오 2시 「말썽난 땅」 수서지구에서는 주민화합 민속 대잔치가 열렸다. 서울시가 철거를 시작하겠다고 말해 온 3월의 첫날,서울 강남구 일원동 4의25 수서·일원택지개발 1지구 앞 공터에서 열린 잔치는 흥겨우면서도 정든 땅을 떠나야 한다는 주민들의 아픔이 배어나오는 행사였다.임차농가,농업노동자 등 2백여 명은 잔치상을 차려놓고 한 해의 대풍을 기원하며 질병을 쫓는 대신 삶의 터전에 엄습해오는 철거귀신 물러가라고 고사부터 지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한 홉씩 가구별로 갹출한 쌀과 성금으로 막걸리 8통,시루떡 20말,음료수 등을 마련해 술상을 차리는 사이 남자들은 징과 꽹과리를 앞세우고 40여 개의 비닐하우스를 돌며 철거의 불안과 집없는 설움을 쫓아내느라 애썼다.

점심식사에서 한잔 술로 불카해진 주민들은 하오 2시께부터 비닐하우스 2개 동을 한 팀으로 22개팀으로 나눠 윷놀이를 시작했고 멍석윷판 5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주민대책위원회 총무인 이동익씨(37)는 『지난해 11월13일 비닐하우스 40개동에 3백55세대의 주민이 입주한 이래 오늘로 서울시가 철거를 주장하는 3월이 됐으나 구체적 생존권보장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선대책·후철거가 실현되는 봄소식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5년째 파밭을 일구며 살아온 장미영씨(32·여)는 『주민등록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취학통지서를 받고도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아이들이 10여 명이나 되고 출생신고를 못한 경우가 3명이나 된다』며 『어린자식들에게 못난 어른들이 가난을 물려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도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나가거나 인근 가락시장으로 채소장사를 하러간 사람들은 마지막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잔치판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권세있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도 부럽지 않게 넉넉한 대보름을 맞은 것처럼 흥겹게 어울렸다.<이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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