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3·1절을 맞이했다. 일제의 강점에 맞서 전 민족이 독립의 의지를 불살랐던 3·1운동은 이제 해마다 되풀이 되는 기념식과 같은 의례적인 행사로나 기억될 뿐이지 그 운동이 갖는 참뜻은 역사의 이끼가 쌓인 채 갈수록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다.그나마 태극기를 내건 가정도 드물어지고 단지 많은 공휴일의 하나로 이날을 인식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일보사와 한국민족운동사 연구회가 공동으로 지난 27일 마련한 「독립운동사의 재조명남북의 시각」주제의 국제학술회의는 망각의 늪으로 묻혀가는 3·1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특히 학술회의가 끝난 뒤 열린 리셉션에서 광복회 회장 이강훈옹(89)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실린 짧은 만찬사는 3·1절 72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값진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옹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선열들의 숭고한 자기 희생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에 광복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 사회의 정의가 되살아 나지 못하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옹은 『친일 세력에게 역사의 단죄를 내려줄 반민특위가 당시 집권세력의 정권욕에 희생돼 제구실을 못하고 해체되면서 민족의 반역자들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커녕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재등장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됐다』며 『그로 인해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은 광복된 조국에서 오히려 더할 수 없는 핍박을 받고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 왔다』고 한탄했다.
이옹은 또 『독립운동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예우가 소홀한 점이 없지 않다』고 섭섭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옹의 이같은 지적은 일제 잔재 청산의 실패로 민족정기를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분노의 목소였고 리셉션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사실 일제잔재 청산의 실패는 해방 후 45년 간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독소로 작용했다.
심지어 역대 정권 아래서 독립운동 연구가 알게 모르게 많은 제약을 받아왔던 사실도 그같은 해악의 반증이다. 또다시 3·1절을 보내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공직사회나 지도층 일각의 구조적 비리 역시 민족정기를 되찾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뜻있는 이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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