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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윤석민특파원 쿠웨이트시 첫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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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윤석민특파원 쿠웨이트시 첫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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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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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서 깨어나 “해방” 대축제/「괴성」 지르며 얼싸안고 눈물해방된 쿠웨이트는 수도 쿠웨이트시를 비롯,전국이 감동과 흥분으로 넘쳐나 있었다.

2백7일간의 이라크 점령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쿠웨이트인들은 거리 전체를 축제의 한마당으로 하여 그간의 응어리를 한껏 풀어내고 있었다.

수도 쿠웨이트시로 향하는 연변에는 수천의 쿠웨이트인들이 몰려나와 국기를 흔들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인들은 승리의 기쁨을 표시하는 전통적 표현인 괴성을 올리며 「쿠웨이트」 「해방」을 연호했다. 이라크군이 버리고 간 탱크 위에 올라선 청년들은 쿠웨이트국기를 길게 펼쳐 들고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국기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는 어린이들은 도로 한가운데로 나와 알·사바수장의 초상화가 든 깃발을 건네 주며 「탱큐」 「웰컴」을 외쳐댔다.

아직 국경을 개방하지 않아 쿠웨이트 피란민들은 사우디 접경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교외로 피신했던 쿠웨이트인들이 가족을 차에 태운 채 경적을 울리며 거리로 몰려나와 왕복 8차선의 널따란 와하리야로에서 사담·후세인의 대형 초상화에 불을 붙이며 개중에는 초상화의 면상을 향해 침을 뱉기도 한다.

지난 25일 쿠웨이트 국경도시 알누아이시브시에서 사우디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기자가 27일 재차 쿠웨이트입국을 시도,마침내 탈환된지 하루만인 이날 하오 5시 쿠웨이트시에 입성했다.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한국의료지원단의 협조로 사막위장군복으로 갈아입은 기자는 이틀 전보다 통제가 훨씬 강화된 국경검문소를 통과,쿠웨이트로 향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는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사막 저편에서 풀썩하는 먼지가 올랐다. 무언가 지뢰를 건드린 모양이다. 이틀 전 꼬리를 이었던 군보급차량 대신 버스와 칸막이를 단 트럭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무더기로 잡힌 이라크군 포로를 사우디로 수송하기 위한 것이다.

다국적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된 고속도로 주변에는 포탑만 따로 떨어져나간 소제 T55탱크·모래에 반쯤 묻힌 채 시꺼먼 잔해를 드러내고 있는 장갑차 등이 즐비했다. 이라크군이 도로 파괴를 위해 설치한 석유를 담은 물탱크들이 도랑 옆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이 소개돼 살벌한 전장터라는 이미지는 쿠웨이트 시내 중심에 다가갈수록 승리의 환희로 뒤바뀌어 갔다 .쿠웨이트시 근교인 나디아시에 접어들며 쿠웨이트인들의 축제는 달아올랐다.<4면에 계속>

<1면에서 계속>

◎불 모두 꺼진 중심가는 마치 “유령의 도시”/곳곳 탱크 잔해… 후세인 초상 불태우기도

쿠웨이트국기를 단 군 차량을 에워싸고 서로 껴안고 볼을 비비던 일단의 쿠웨이트인들은 기자가 탄 차를 멈추자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한국』이라고 하자 『아샤키코리아,감사합니다』라며 연방 손을 잡아 댄다. 도로 주변에 늘어선 2,3층 건물의 옥상마다 미·영·사우디·이집트 등 다국적군기가 쿠웨이트국기와 함께 나부낀다.

석유회사직원인 압둘라·알하만씨(30)는 소감을 묻자 『긴 악몽에서 깨어나 새로 태어난 느낌』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알하만씨는 울먹이며 기자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환희의 극에 달한 교외주택지와는 달리 인적이 끊긴 쿠웨이트시 중심가로 갈수록 주변은 또다시 정적 속에 잠긴다. 4일째 전기·수도가 단절된 쿠웨이트시는 곳곳에 파괴된 잔해와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로 유령의 도시처럼 보였다. 기자를 보고 조심스럽게 꾀죄죄한 차림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집트인 살렘씨(28)는 미처 피란을 못한 자신들이 당한 고충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반이라크 대열에 이집트 등이 동참하자 이라크군은 이집트·파키스탄인 노무자들을 강제 노역시키는가 하면 『고문까지 자행했다』고 털어놓는다. 아랍권의 균등한 부의 재분배라는 후세인의 논리는 당치 않은 모순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후세인은 자신보다 약한자를 괴롭힌 이기적 국수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부모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시내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압델·아크바르씨(27)는 이라크군이 1주일 전부터 쿠웨이트인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기 시작,사촌형제 2명이 현재 생사여부를 모르는 상태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시의 결정은 옳았다』고 강조했다.

아크바르씨에 의하면 쿠웨이트시에서 이라크군이 철수한 시각은 25일 하오 10시께이며 쿠웨이트 저항군이 26일 0시를 기해 탈환을 선포했다는 것. 시내 곳곳에서는 치안을 담당한 저항군들이 「질서」를 외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다국적군의 진격과 함께 쿠웨이트내 4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또다시 짐을 싸야 한다. 이라크편을 들었던 자신들을 쿠웨이트인들이 반 길리 없기 때문이다. 상점을 운영한다는 한 팔레스타인인은 『나는 갈 곳도 없다』며 『그냥 쿠웨이트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고 힘없이 말한다. 승리의 환호 뒤에 전쟁의 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라크군의 방화로 시꺼멓게 그을린 시내중심부 인터내셔널호텔은 어둠이 깔리자 흉물스런 모습을 더하고 있다. 탈환시 시가전은 없었으나 곳곳 상점의 진열대는 완전히 비어있었으며 급히 철수하다 뒤집힌 이라크군 수송차량 속에는 이들이 약탈한 가전제품·가구 심지어 이불까지도 내버려져 있었다. 불빛 한 점 없이 전화통신마저 두절된 쿠웨이트시를 뒤로 하며 바라본 하늘은 파괴된 유정에서 내뿜는 연기로 달마저 가리울 정도였다. 유정화재의 불빛이 지평선 멀리 봉화처럼 솟아오르는 가운데 승리를 자축하는 쿠웨이트인들이 발사한 예광탄이 긋는 붉은 사선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쿠웨이트=윤석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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