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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규제의 완화/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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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규제의 완화/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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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간섭 부패유발·형평성 해쳐지난 몇 년간 우리는 시대를 풍미하는 민주화의 열풍 속에서 이 나라의 내일에 대해 숱한 기대와 부푼 희망을 걸어왔다. 그러한 원망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사회전반의 투시성이 높아져서 지난 시대의 갖가지 부정부패,특히 권력형 부정부패가 많이 치유되리라는 것이었다. 그간 절대권력의 그늘 아래서 숨죽이며 겨우 명맥만을 유지해온 국회가,야당이 그리고 언론과 각종 이익집단들이 이제 제 목소리를 찾게 되면 이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부정과 부패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되뇌기조차 부끄러운 최근에 빚어진 갖가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사건들은,그간 진행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그 알맹이에 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슴아프게 증거하고 있다. 권력의 정상은 물론이고,기대를 걸었던 민주정치의 견제장치들도 지난 시대의 어두운 삶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부패의 전사회적 제도화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지난 시대의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절박한 심경에서 이른바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갖가지 처방들이 나오고 있다. 거시적 차원의 구조변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물갈이의 필요성과 의식개혁이 강조되고,때로는 구체적 개선책이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그럴 듯한 처방들이 하나 같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그 처방의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약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필자가 부정부패에 대처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제의하고자 하는 「과잉규제의 완화」라는 처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나 일반시민들이 대형 부정사건들이 터졌을 때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

즉 규제강화의 처방과는 반대의 입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본다.

우리의 경우 대체로 굵직굵직한 부정사건이 터지면 언론이 들끓고 여론이 구기하며 한결같이 엄중한 처벌과 발본색원을 외친다. 곧이어 감사와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규제강화의 분위기를 한껏 증폭시킨 후 기득구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된다. 이처럼 부정부패의 사례들은 공적 규제를 정당화하고 또 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며,또 많은 이들은 이를 불가피하다고 수긍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부정과 부패는 이러한 규제강화에 의하여 치유될 수 있을까. 공적 규제의 강화는 오히려 관료권의 비대화와 전횡,그리고 기득구조의 고착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가 시민사회를 크게 압도해온 우리의 경우 민간영역에 대한 정부개입과 관여의 폭이 매우 넓고 그 정도도 깊다.

적절한 공적 규제는 공익에 기여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정책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적절한 환경보호정책이나 소비자보호정책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문제는 불필요하거나 정도가 지나친 규제와 이의 집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부패와 사회적 형평성의 결여에 있다.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그간 사회·경제영역에 대한 정부개입과 공적 규제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공권력의 과잉 내지 불요불급한 관여가 너무 잦고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민주화와 자율화라는 시대정신을 거스릴 뿐 아니라,각종 수단을 통한 규제의 행사과정에서 부정과 부패가 개입될 소지를 매우 크게 한다. 각종의 제도적 진입장벽과 선별적 지원시책 등과 연관하여 관료권의 비대화와 정경유착의 개연성,그리고 여기서 빚어지는 온갖 뒷거래는 자칫 전반적 사회부패를 선도하기 십상이다. 과잉규제의 벽을 뚫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특혜이다. 따라서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정치력·금력 내지 정보의 힘을 갖고 있는 부류는 이 사회의 기득층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과잉규제는 관료권과 기득계층의 이익에 봉사할 개연성이 높고 여기서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고 공적 규제를 전부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예컨대 대기업의 횡포가 극심하고 시장경제적 조건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정부규제를 배제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는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정도 및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의 욕구에 준거하여 분야별로 그 정도와 범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나친 노동통제나 교육통제는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규제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결집하는 합의적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외에 정부규제에 관련된 합의제기구는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관료적·계층적인 단선적 구조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외에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규제에는 엄청난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이다. 곧 규제에 따른 기회비용을 여타의 생산적 목적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도를 검토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눈앞의 부정부패가 무서워 다시 과잉규제사회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오늘의 민주화·자율화 욕구에 크게 역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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