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계속땐 군 궤멸·자신운명 위태 판단/일방철수로 반전·반미여론 확산도 노려이라크가 지상전 개시 3일째인 26일 상오(현지시간) 쿠웨이트로부터 일방적 철수를 시작한 것은 지상전의 패배를 철군으로 정당화하고 조기휴전을 성사시켜 이라크 군사력의 완전 무력화와 사담·후세인 제거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보려는 포석이다. 후세인은 이날 철군발표에서 자신들의 결정을 사전에 소련측에 통보했다고 밝히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가 휴전을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 발표로 미루어볼 때 이라크는 다국적군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는 유엔 안보리가 휴전을 결의토록 하기 위해 소련측에 모든 협상권한을 위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분석은 26일 안보리 개최를 요청한 소련이 미국이 주장해온 철군조건과 거의 일치하는 새로운 평화안을 마련했다는 보도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후세인이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도중에 적에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격인 일방적 철군을 단행하려는 것은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지상전 초기에 이라크군이 너무 쉽게 허물어지고 있어 전쟁을 계속할 경우 자신의 운명마저 위태롭다는 판단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전황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려 있지만 다국적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이라크군을 쉽게 제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이라크 남부 바스라항 근처까지 깊숙히 진격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다국적군은 3개 방면에서 쿠웨이트를 포위,퇴로가 막힌 이라크군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전략이 성공할 경우 다국적군은 쿠웨이트에 주둔해 있는 45만 명의 이라크군과 그들이 갖고 있는 군사장비들을 모두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병력이나 장비면에서 이라크 전체 군사전력의 절반 이상이 다국적군 손에 넘어가 이후 종전이 되더라도 이라크는 중동 최대의 군사대국으로의 지위를 영원히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후세인은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고 이라크 영토내로까지 진입한 다국적군이 자신의 정권자체를 전복시키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 전쟁을 중단시켜 보려는 것이다. 때문에 이라크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휴전결정을 봉쇄하고 지상전을 계속하더라도 곧 일방적으로 후방병력부터 철군합의 의사를 보였다.
후세인은 25일중으로 현 병력의 철군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이라크군이 철수를 하는데도 미국 등 다국적군이 계속 공격을 가한다면 다국적군은 전쟁을 중단하라는 강한 내·외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을 이라크는 노리고 있다.
아랍권에서는 이제까지 거의 반미 시위가 없었던 이집트에서도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연일 격렬한 시위를 할 만큼 반미·반서방 감정이 폭발하고 있다. 소련에서도 25일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미국의 행동을 중동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비난,미소 관계가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지상전 전략은 궁극적으로 후세인 거세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후세인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는 후세인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이 전혀 없고 오히려 이번 전쟁으로 후세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더욱 강화된 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지상전에서 이라크군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엄청난 전력손실을 입는다면 장기적으로 후세인 정권기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후세인은 그 동안 자신이 주장해온 철수조건 중 상당부분을 얻어내면서 화려하게 철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이처럼 엄청난 타격만을 입은 채 철수를 해야 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내부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집요한 공세를 가할 것이다.
이러한 위협요소들을 막기 위해서 이제 후세인은 쿠웨이트내 병력을 철수시켜 우선 이라크 자체와 자신을 지키는 일이 시급해진 것이다.<암만=배정근 특파원>암만=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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