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저기 운동장 그라운드 마당에 나와 있는 사람들,지금 당장 빨리 라인선 줄쳐놓은 금 밖으로 나가요』한 20년도 더 전에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사람들을 웃겼던 장내방송이다.
10년도 더 전에는 동네를 떠들고 다니는 통장의 핸드마이크 소리에 주민들이 낄낄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저녁 도신국민학교에서 「×××」라는 영화를 상영한다 하오니 주민 여러분은 한 분도 빠짐없이 왕림하셔서 영화를 상영해 많은 성원있으시기 바랍니다』
또 요즘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녹음안내방송을 꼬박꼬박 듣게 된다. 안전선 밖은 결코 안전하지 않을텐데도 승객보다 지하철의 안전을 생각해서인지 지하철 공사는 늘 이렇게 안내를 하고 있다.
문서를 작성할 때나 마이크를 잡았을 때 평소와 달리 좀 유식한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다중을 상대로 한 고지·안내문이 엉터리인 경우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성원,참여,호응을 촉구하는 안내문은 한결같이 「많은∼있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돼 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라고 쓰면 하다 못해 잉크값 페인트값이 줄어들텐데 영어의 Be동사나 have동사에 의한 국어 왜곡,일본어식 「의」의 남발이 눈에 거슬릴 지경이다. 얼마 전에 뿌려진 한 재야단체의 성명문에는 「홀연히 일치단결하여…」라는 문구가 들어 있어 실소하게 만들었다.
또 목욕탕에 가보면 자기네가 목욕을 하는 것처럼 「목욕합니다」라는 입간판이 의젓하다.
음식점에서 밥 한 공기를 더 달라고 하면 여종업원은 어김없이 『식사 하나 더』하고 소리를 지른다. 사무실로 음식주문을 했을 때 그릇을 찾으러 다시 온 10대 종업원이 『식대비값 누가 계산하세요?』라고 물어온 일도 있었다(계산은 자기가 하면 되고 식대라면 그만일텐데 식대비로도 모자라 식대비값이라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우리 말에 너무 무관심하며 말을 따지는 일을 좀스럽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일본말 등의 외국어 남발도 고질이지만 제 나라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문화부가 지난 2일 국어연구원에 개설한 우리말 상담창구 가나다전화((765)9909)에는 요즘 하루 평균 20통의 문의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문의내용은 주로 호칭과 지칭 등 언어예절에 관한 것이다.
이런 곳에 의지를 해서라도 우리는 어법에 맞는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국어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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