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불투명” 당국 요지부동/바닥난 기금 보전속셈… 자율화 스스로 깨걸프전쟁에도 불구,국제유가가 한 달 이상 폭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데다 전쟁이 끝나도 당분간 저유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국내유가 인하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25일 현재 중동산 원유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두바이유는 배럴당 13.29달러로 국내기준유가 19.40달러에 비해 무려 6달러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오만유도 13.84달러로 역시 매우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두바이유와 오만유는 걸프전 발발 직전 백럴당 25달러대였으나 개전 이튿날인 1월17일부터 폭락,40여 일 동안이나 13∼15달러대에 머무르게 됨으로써 당연히 국내 기준유가와의 차액 만큼 국내유가를 인하해야 할 것이라는 재계 및 일반소비자들의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과 동자부 등 정부 주무부처에서는 국내유가를 당분간 인하할 계획이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선적 후 통관까지 소요되는 평균 한 달 반 이상을 기다려야 되므로 아직 우리나라가 저유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 종결 후 유가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아직 유가인하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당장 3월초부터는 가격이 폭락한 중동산 원유가 본격적으로 통관될 예정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성수기가 끝났기 때문에 오는 10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월동기 이전까지는 이같은 저유가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세계석유기관들이 전망하고 있다는 사실.
정부는 걸프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개전 후 국제유가가 40∼60달러로 폭등할 것이라는 석유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이번 전망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고유가 예상은 전황이 미국측에 크게 유리하지 않을 경우 단기간 동안 유가가 폭등할 것이며 전쟁이 끝나고 하반기부터는 다시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는 점을 정부는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당시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조건으로 유가전망이 나온 것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상황을 놓고 국제석유기관들이 예측하는 유가는 크게 빗나가리라고 보기 어렵다.
올해부터 단계적인 유가자율화를 실시할 방침인 정부는 당초 걸프전쟁 후 고유가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일단 개전 후 한차례 유가인상을 단행한 다음 등유와 휘발유 등 국제유가와 비슷한 가격구조를 보이고 있는 유종부터 자율화하려고 계획했었다. 똑같은 이유로 지금 유가가 폭락했고 앞으로도 저유가가 예상되므로 한차례 유가인하를 단행한 후 유가자율화를 실시해야 논리적으로 맞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스스로 내세웠던 유가자율화의 논리를 뒤집어 유가인하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석유사업기금의 유가 완충재원이 바닥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까지 발생한 정유사 원유도입손실액을 보전해주기에도 약 1천억원 가량이 모자라며 국내도입단가가 기준유가보다 높게 되는 올 2월말까지는 약 4천2백억원이 부족할 전망인데 이를 3월 이후 싼 원유를 도입하게 됨으로써 남는 차액으로 대체시키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당초 예측대로 오르면 국내유가를 대폭 인상(23달러일 경우 22%)해 그 이전까지의 정유사 손실액을 메워주고 향후 국제유가가 추가로 인상되면 국내유가를 그때그때 올리든가 가격자율화로 대체하려고 했던 것.
그러나 국제유가가 폭락하기 시작하자 국민여론상 유가인상을 생각지도 못하게 됐고 이에 따라 수천억 원의 보전자금 마련이 어려워져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아직 재정투융자 특별회계(재특)에 1조1천억원이 예탁돼 있지만 추가경정예산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돈을 빼어 쓸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엄청난 자금을 마련해놓고도 그 돈을 정작 필요할 때(국제유가가 올랐을 때) 쓰지 못하고 생색내는 사업이나 정책에 유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는 겉으로는 국제유가의 불투명을 유가인하 반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재특 예탁분을 건드리지 않고도 정유사 손실분을 보전해 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3월 이후 값싼 원유가 계속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4천2백억원이 걷힐 때까지인 올 4·4분기께나 돼서야 소비자들은 유가인하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방준식 기자>방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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