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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망각/황소웅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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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망각/황소웅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1.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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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하나 터지면 너도나도 온세상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다른 사건이 터지면 그전 사건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 사건에 몰입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의 버릇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멀리 갈것없이 우선 가까운 예로 수서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불과 수일 전까지만 해도 온통 천지가 뒤집힐 듯 요란하게 떠들어대던 것이 수서사건이었지만 지금은 중동의 지상전에 파묻혀 벌써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려 하고 있다. 밝히고 넘어가야 할 의혹이 눈처럼 쌓이고 쌓여 있다고 해서 얼마나 입방아들을 찧었는데 중동전 뉴스에 덮여 흐지부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재수사를 촉구하는 일부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시위마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느냐는 듯 까맣게 잊혀질 게 분명하다.수서의혹 전에 있었던 사건은 어떤가. 국회의원들이 뇌물을 받아 외유를 했다고 해서 3명의 의원이 「대표적으로」 쇠고랑을 찼던 사건이 있었다. 그보다 조금 앞서서는 예체능계 대합입시 부정이 폭로되어 세상을 발칵 뒤집다시피 했었다. 확대하려면 한정이 없을 것 같아서인지 뇌물외유사건은 미진하다고 들꿇는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3명의 의원만 구속하는 선에서 손을 떼어버렸다. 대입부정사건은 전모를 파헤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다. 전국 1백15개 대학에 대한 전면 감사로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정부가 큰 소리를 쳤지만 인력도 없고 시간도 없다며 손을 놓고 있어 역시 흐지부지될 전망이다.

연속되는 대형 사건들이 제대로 마무리도 되지 않고 끝도 보지 못한채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한두 해가 흘러간 것도 아닌데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몇 가지 사건들이 물고 물리는 식으로 연속 나타났다 가는 사라지곤 한 것이다. 새 사건이 바로 그전 사건을 먹어치우는 식의 연쇄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3월 실시」로 여야간에 합의해 놓은 지방의회선거까지 까먹으려드는 데에는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하겠다고 발버둥쳐본 들 「3월 실시」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것 같다. 「5∼6월 실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때에 가서도 과연 실현될지 의문이다.

걸프전이언제나 끝나게 될지도 의문이거니와 종전이 돈 뒤에는 또 무슨 사건이 터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집어놓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뽑은 정치인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소에 욕을 퍼붓다가도다음 선거에 다시 나오면 과거는 깨끗이 잊고 또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건망증이 심한 게 우리 국민이라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잊을 것은 깨끗이 잊되 기억할 것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민주화시대의 주인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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