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불러들인 다국적군은 지금까지 「예정된 시간표」에 따라 계획대로 전쟁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지금 세계의 관심은 지상전의 전개과정 뿐만 아니라,그 뒤에 올 중동지역의 상황변화에 쏠리고 있다. 그것은 사담·후세인 대통령의 분명한 패배를 전제로 하는 이 지역에 있어서의 국제질서 재편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미 지난 6일 5개항에 걸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하원외교위원회에서 밝힌 5개항은 맨 마지막이 「석유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어서,지역질서 재편구상은 사실상 4개항이 된다. 그것은 ①걸프지역 국가들간의 새로운 집단안보 체제 구성 ②군축 ③경제건설 ④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다.
지난 16일 다국적군에 합류한 아랍 8개국이 합의한 「전후 구상」도 이러한 미국측 원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군사력을 제공하고,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6개 산유국이 두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 밖에 소련과 프랑스는 지난 12일 팔레스타인 문제나 레바논 문제 등 이 지역의 전반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의 구상이 전후 이 지역의 군사적 균형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프랑스나 소련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보다 정치적이고 장기적인 위기를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예상대로 다국적군의 압도적 승리로 끝날 경우,이 지역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자리에 설 것은 확실하다. 섣불리 사담·후세인을 지지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랍세계를 움직이는 커다란 에너지원이었던 회교과격주의는 퇴조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지역의 평화가 미국의 구상대로 순조롭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구상의 가장 큰 약점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균형잡힌 해결책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급한 낙관론자들은 벌써부터 전후 중동은 미국의 「1인 천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아직도 상당부분 살아있는 이라크의 군사력과 후세인 체제의 해체에 미치지 못하는 선에서 끝난다면,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만 「잠복」할 뿐이다. 또 이라크에 완전한 힘의 공백사태가 일어난다면 이웃 시리아나 이란의 새로운 패권주의를 자극할 위험성도 크다. 그런 뜻에서 지상전의 진행상황은 아직도 우리의 중대한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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