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하오 서울 중랑경찰서 형사피의자 대기실에서는 H여고 2년 권 모양(17)이 J중 2년인 남동생(14)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갑상선 질환을 앓아 퉁퉁 부운 얼굴에 눈물이 얼룩진 누나를 달래면서 동생도 함께 울고 있었다.남매의 죄목은 특수절도. 지난 24일 하오 3시께 남매는 집에서 가까운 중랑구 면목1동 안 모씨(27·금형설계사) 집 현관을 드라이버로 뜯고 들어가 시가 2만원짜리 여자손목시계 1개를 들고 나오다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하루 전인 23일 낮 권양은 동생이 다니는 학교로부터 90년 4분기 공납금 7만5천6백원을 25일까지 내지 않으면 제적할 수밖에 없다는 독촉전화를 받았다. 통장아저씨의 주선으로 독지가의 성금을 받아 겨우 등록금을 냈던 권양은 동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감 때문에 머리를 짜보았지만 돈을 마련할 길은 없었다.
아버지(42)는 심장병이 악화돼 막노동도 못하게 된 데다 몇 푼 안 되는 노임마저 지난해부터 어머니(41)가 도박판에 쓸어넣는 바람에 권양 집은 끼니가 걱정일 정도였다. 지난 13일엔 노름빚을 받으러온 사람들이 가재도구까지 모두 들고 가버렸다. 어머니는 그날 하오 유일한 재산인 금반지·목걸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챙겨 나간 뒤 이틀 만인 설날 저녁에야 돌아왔다.
권양은 24일 낮 『학교에 다니게 해줄테니 걱정 마라』고 달래며 동생의 손을 잡고 나섰다. 집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나온 권양은 문방구에서 학용품 칼을 산 뒤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대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갔다. 『무섭다』는 동생을 굳이 데리고 다닌 것은 권양도 무섭기 때문이었다. 덜덜 떨면서 제정신이 아닌 채 방안에서 들고 나온 것은 손목시계였다.
25일 경찰서에 달려온 어머니는 『다 내 잘못이다』라며 용서를 빌었지만 남매는 이미 특수절도가 돼버렸다.
경찰은 남매가 딱했던지 검찰에 불구속수사 품신을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다. 권양의 갑상선 질환은 곧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고 13년째 무상으로 얹혀 살아온 판잣집도 새 집을 지으려는 주인의 계획 때문에 곧 비워주어야 하는 처지이다.<이동국 기자>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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