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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폭풍에 애끊는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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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폭풍에 애끊는 부정

입력
1991.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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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인 처·돌박이 남기고 귀국한 현대 박휴중씨/엄마 잡는 막내/국경서 생이별/장·차남 달래며 “전화 비켜가길”이라크인 아내 때문에 철수를 포기했다가 지난 12일 어쩔수없이 아내와 돌박이 막내아들을 남겨둔 채 이라크를 탈출한 현대건설 바그다드사업본부 직원 박휴중씨(36·한국일보 1월16일자 23면 머릿기사 보도)는 24일 상오 다국적군의 지상전 돌입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상전이 터지리라고 예상을 하면서도 소련의 중재안 등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는데… 전쟁의 폭풍이 아내와 아들을 비켜가기를 기구할 뿐입니다』

밤 늦게까지 TV의 전쟁속보를 보느라 잠을 설친 박씨는 이날 아침 경기 부천시 약대동 현대아파트 5동 103호 부모의 집에서 『엄마가 보고싶다』고 한국어와 아랍어를 섞어가며 투정을 부리는 장남 민우군(7)과 차남 신우군(5) 형제를 달래면서 허탈해했다.

전시 국민 총동원령이 떨어져 이라크국적인 아내 모나·케일리씨(35)의 출국이 불가능해지자 박씨는 가족이 모두 함께 남기로 결정,내외가 다른 현대 직원들의 대피 및 철수 뒷바라지를 도맡아왔었다.

바그다드 동북방 70㎞ 지점 바쿠바의 농장에 대피해 있으면서 바그다드와 이란국경을 오가며 동료들의 출국비자 발급을 도와주고 실랑이 끝에 국경초소를 통과시키는 일은 성사시켰으나 정작 모나씨의 출국은 대통령 허가사항이란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던중 지난 8일 KBS 국제단파방송에서 아버지 박경래씨(75) 어머니 이선우씨(68)의 탈출호소 목소리를 듣고 갈피를 못 잡던중 15일을 전후해 지상전이 터진다는 소문이 현지에 파다해지자 박씨는 아내와 후일을 기약하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부모님 생각을 해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나가라』는 아내와 세 아이들을 데리고 12일 이란국경 코스라비로 갔으나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젖먹이가 울어대는 바람에 두 아들만 데리고 생이별을 했다.

이라크를 빠져나올 때까지 박씨가 겪은 전쟁의 현장은 죽음의 공포와 궁핍 그리고 혼란의 수렁이었다.

이란과의 전쟁에 뒤이은 전쟁으로 집집마다 전사자 가족임을 표시하는 국기가 걸려 있었다. 식료품은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송전시설이 다국적군 공습으로 파괴돼 냉장고를 쓸 수 없어 간신히 구한 음식도 곧 썩어버렸다.

수돗물 공급도 신통치 않아 이라크사람들은 강으로 빨래를 하러 다니며 『전쟁이 생활을 50년 전으로 후퇴시켰다』고 푸념했다.

두고 온 막내의 첫돌이 지난 23일이었으나 이라크를 빠져나올때까지 잔치준비는커녕 간신히 구해다 놓은 분유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국내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아랍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후세인과 후세인 제거가 궁극목표인 미국 사이에 지상전은 불가피했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 정세를 분석하는 박씨는 『제발 전쟁이 빨리 끝나 희생자가 적어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아들을 달랠 겸 24일 하오 서울 잠실에 사는 누나 박휴순씨(41) 집으로 무거운 나들이를 한 박씨는 『우선 KBS 국제방송을 통해 무사귀국소식을 아내에게 알리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가 아내와 막내를 데리고 나올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조바심을 냈다.

지금 현대 직원 7명,방글라데시 고용인 3명 등과 함께 공포에 떨고 있을 아내와 아들의 탈출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스위스적십자단원의 소식에 온 희망을 걸고 있는 박씨의 모습은 걸프전이 지구 저편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신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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