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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악몽잊고 만학의 열정/전 중정차장보 김정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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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악몽잊고 만학의 열정/전 중정차장보 김정섭씨

입력
199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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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근처서 정 총장 접대… 몇 차례 연행 곤욕/한때 유랑… “제2인생” 서강대 박사과정 입학운명의 날 10·26의 그때 그 밤에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저녁을 함께 하다가 역사의 대격동에 휘말렸던 전 중앙정보부 차장보 김정섭씨(62)가 오는 3월 서강대 대학원 무역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김씨는 이미 지난해 2월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8년 동안 중앙정보부에서 근무,당시 국내 담당차장보였던 김씨의 삶이 뒤바뀐 것은 79년 10월26일 하오 5시. 2주 전인 10월13일 대전 전국체전에 경북팀 승마선수로 출전,마장 마술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던 김씨는 이날 승마협회 회원들과 회식할 예정이었으나 『하오 7시까지 궁정동으로 오라』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정 총장을 초청했다가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을 준비하게 되자 자기 대신 접대하라고 한 것이었다. 하오 7시께 안가의 현관에서 정 총장을 처음 만난 김씨는 불안했던 당시의 국내 상황과 대책을 화제로 함께 식사를 했다. 김재규는 7시10분께 잠깐 들러 정 총장에게 실례를 사과했다(이때 그는 2층 집무실에 들러 권총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인 7시50분께 난데없는 총성이 울렸다. 김씨가 궁정파출소에 확인을 지시하고 다시 앉았을 때 사색이 된 김재규가 뛰어들어와 주전자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더니 김씨와 정 총장을 차에 타게 했다.

차 속에서 정 총장의 질문을 받은 김재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밑으로 돌리며 『이 분이 돌아가셨습니다』고 말해 김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3·1고가도로에 들어섰을 때 정보부로 가겠다는 김재규에게 정 총장이 육군본부로 가자고 했고 운전석 옆에 앉아있던 김의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도 이에 동의해 승용차의 행로는 육본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혼란,침통,불안으로 뒤엉킨 육본에 김을 남겨둔 채 27일 자정께 남산사무실로 돌아와 국장 7명을 소집,비상사태에 돌입했다.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새벽 4∼5시께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서야 알았다.

열흘동안 부하 7명과 함께 서빙고의 보안사 분실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은 김씨는 무혐의가 인정돼 겨우 풀려났지만 정보부 일에 넌덜머리가 나 그 길로 짐을 챙겨 한남동 집으로 가버렸다.

그러나 김씨는 12월13일 새벽 또다시 서빙고로 끌려갔다. 정승화 총장과의 관계를 대라는 호된 추궁을 당하면서 김씨는 12·12사태를 알게 됐다.

며칠 뒤 풀려난 김씨는 권력과 정치에 대한 염증과 지금도 기억하기 싫은 당시의 악몽을 잊고 싶은 마음에서 전국을 유랑했다.

이어 경북고 동창 2명과 함께 안산의 야산을 개간해 축산업을 하려했던 김씨는 5년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85년부터는 예인선 4척을 사들여 선박사업을 시작했다. 갖은 고생 끝에 사업이 자리를 잡고 1남4녀를 모두 출가시키자 다시 회의가 생겼다.

김씨는 58세가 된 87년 3월부터 대학원 입학공부를 했다. 65년 영남대 경상과를 나온 뒤 30여 년 만에 새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해에 김씨는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이 심해져 진단결과 장암1기 판정을 받고 대장을 50㎝나 잘라대고도 항암제를 맞으며 학교에 다녔다. 1학기 때 올 A를 딴 김씨가 석사과정 5학기 동안 결석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모든 과거사를 용광로에 쓸어넣고 새로 불을 지피는 마음으로」 환갑의 나이에 학위를 딴 김씨는 지난해 6월 박사과정에 응시했다가 떨어졌으나 6개월 만인 12월에 재도전해 합격했다.

불교신자인 김씨는 남한산성의 망월사 신도회 회장이며 서강대 경영대학원 총동창 회장으로 사회활동도 하고 있다.

정보부 출신이라는 전력 때문에 아들뻘 젊은이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김씨는 『위정자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정보기관을 사병화했지만 실무자들은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했다』고 대답하곤 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에서 부인 김삼화씨(63)와 단둘이 사는 김씨는 제2의 인생을 학문으로 완성하겠다는 학구열에 불타고 있다.<원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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