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정국」이 걸프전의 고비를 계기로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것 같다. 하나 불길이 자지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지방순시에서 「밝힐 것은 밝히고 처리할 것은 법에 따라 분명히 처리할 것」이라고 「수서의혹」에 관련해 밝히고 있는만큼 한편에서는 검찰수사를 좀더 지켜보자는 관망파가 있는가 하면,다른 한편으로는 수서비리를 규탄하는 첫 옥외집회를 여는 등 새 불씨 「준비파」도 있는 등 정중동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그런데 더 두고봐야겠지만 김용환 민자당 전 정책위 의장과 서청원 제3정책조정실장을 소환해 수서민원 변조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수서사건 전모를 발표한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이나 의문점에 대해 적극적인 추궁을 하지 않고 있어 「종결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시간이 약이 아닌가」하는 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검찰도 속으로는 시간을 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수서의혹」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단순 대사건은 아닌 것 같다.
서울시의 전 전 시장이 2년여에 걸쳐 수서분양을 허가하지 않은 자세는 높이 평가한다 하더라도 그 사이 수서민원을 결과적으로 크게 키우게 됐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하는 것은 수서사건의 특성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말이다.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검찰도 사건을 오히려 키울 가능성이 있다할 것이다.
지금 야당은 수서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특별검사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나라 법집행의 최후보루인 검찰을 불신하게 된 데서 나온 대안이라는 점에서 그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여론에 비위만 맞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마주쳐 실현가능성이 있나하는 점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회의 국정조사권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한보의 불순자금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여야 의원들이 무슨 낯으로,어떻게 조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설사 조사가 진행된다 해도 여야가 짜고 만들어놓은 야합이라고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특검제의 경우도 2개의 난관이 있다.
첫째 현행법상 근거가 없고,새로이 근거입법을 만들려면 그 과정 자체가 정치혼란을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설사 입법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 나라의 수사 관행으로 미뤄볼 때 정부가 음성적인 방해를 할 경우 의혹의 미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아무도 가지지 못한다.
「수서특혜」는 행정에 맡길 일을 정치가 끼어들어 발생한 사건이고,그 수습은 정치적 결단이 전제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검찰)에만 맡겼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위기관리의 경중과 선후를 결정하는 데 미숙했던 탓에 초래된 자충수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정치성 사건은 범죄와 정치가 표리관계를 이루게 마련이다. 때문에 수사가 성공적이기 위해선 정치의 조력이 불가결하다.
검찰의 계속수사가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이라면,그래서 「정치적 결단」을 요구할 역사적 의무가 검찰에 있고,응해주어야 할 시대적 책임이 정치권,특히 대통령에게 있다할 것이다. 그 「결단」 없이 정부는 수서의혹의 터널을 벗어나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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