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땐 독립·해방후 반공운동/수형중에도 기타 만들어 연주/아직 사글세방… 금전만능 예능교육 개탄망국의 한을 기타로 달래며 기타를 이용해 독립운동까지 했던 칠순의 기타리스트는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지만 외롭지 않다. 반세기 이상 분신같이 함께해온 기타가 있고 자식과 다름없는 제자들이 그의 주변을 늘 훈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한국기타협회 상임고문 이두표옹(70·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30의7)은 제자들이 개최키로 한 연주회를 기다리며 소년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다. 56년부터 서울시내의 대학가에서 기타교습을 시작,71년부터 신촌로터리의 광창빌딩 10평짜리 옥상 셋방에 이표기타학원을 차린 이옹이 훈장을 받자 제자들의 모임인 참알기타아카데미(회장 김천·37) 회원 60여 명이 23일 하오 6시 서울 중구 정동 예음홀에서 고희 축하 및 훈장서훈기념 연주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21일 저녁에도 제자들의 리허설을 지도하면서 이옹은 바이올린을 제작하다 왼손 약지 마디가 잘린 데다 오른손에 풍기가 생겨 이번 연주회에서 독주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22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이옹은 16세 때부터 포크기타에 매료돼 교습을 받았고 39년 일본유학을 간 뒤 당시 일본 만돌린·기타협회 회장이던 사사키·마사오씨(좌좌목정남)로부터 클래식기타를 배웠다.
재일 조선학생 항일단체인 여명회에 가입했던 이옹은 42년 10월 연락책으로 검거돼 5년형을 선고받고 동경 스가모구치옥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당시 이옹은 「기타나 치고 다니는 놈」 행세를 하면서 기타 속에 비밀문서를 넣고 다니며 일경의 눈을 피해 연락임무를 수행했다. 이옹은 해방 후 귀향한 뒤에도 반공단체를 결성했다가 체포돼 시베리아의 하바로프스크수용소에서 6·25가 날 때까지 5년간 수형생활을 했으며 6·25중에는 주을반공유격대 대원으로 유격전까지 했다. 이옹의 반공활동은 그 뒤로도 계속됐지만 공을 뽐내지 않아 지난해에야 훈장을 받게 됐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이옹에게 기타연주와 인생을 배워온 제자들은 이옹을 통해 배운 음악과 사랑의 실천을 위해 75년에 참알기타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이옹은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소련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기타를 잊지 못해 합판과 전깃줄로 기타를 만들어 연주했던 경험담 등을 들려주며 『항상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살라』고 말해준다.
평생 내집은커녕 지금도 보증금 1백60만원,월 7만7천원짜리 사글세집에 살면서 남편을 내조하는 부인 이원분씨(55)도 친자식같은 제자들의 호의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72년에 한국기타협회에 가입,75년 정립회관에서 기타연주회도 열었던 이옹은 죽는 날까지 제자양성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옹은 부정과 금전거래로 썩어버린 우리나라 예능교육계를 안타까워하고 있다.<원일희 기자>원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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