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로 일단락되는 듯하던 「수서사건」은 「한보자금의 민자당 유입」 주장에 이어 「문서변조」 사실이 새삼 드러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문서변조사건은 여야 정치인 및 관련공직자 9명의 구속과 서울시장 등의 문책인사로 수서파장을 수습하려 했던 정부·여당의 구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변수로 이해되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진행여하에 따라 뇌물여부에 초점을 맞췄던 검찰수사와 달리 청와대와 민자당이 이번 사건에 깊이 연루됐다는 불씨를 제공할 수도 있어 당정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바꿔 말해 변칙적인 수서택지 특혜공급결정이 있기까지 외압과 정치자금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갈 수록 복잡하게 꼬여가는 수서의혹을 「자금유입」「문서변조」 「당정역할」 등 세 가지 주요 쟁점별로 정리해본다.
○한보자금 민자 유입/김·서 의원 모두 부인… 아직 의혹차원/야선 “한보 출신 부실장이 구체 중개”
「한보 로비자금의 민자당 유입설」은 민주당 장기욱 전 의원 등의 문제제기 후 확실한 진위를 가리지 못한 채 현재까지 의혹차원에 머물러 있다. 발설자로 알려진 김동주 의원이 민자·평민 의원들과의 구치소 접견에서 발언사실을 부인했고 관련당사자인 서청원 의원은 자신의 결백을 정치생명까지 연계시키며 장 전 의원의 주장을 일축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장 전 의원은 엄청난 파장을 낳고 있는 자신의 주장을 한발짝도 후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고 평민 의원들도 『김 의원 접견내용이 사실부인보다 문제 확대를 피하는 쪽에 무게를 실은 느낌』이라며 의혹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 의원이 지난해 8월 수서 민원인들에게 회신한 당정회의 내용 중 「민자당 최고위원 결재」부분을 누락시킨 변조공문을 검찰에 제출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서 의원의 결백주장 「선도」가 새삼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야당이 3백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한 정태수 한보회장의 비자금 행방에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터여서 서 의원의 공문변조 사실은 검찰 수서수사의 결론에 다시금 큰 의문을 던진 형국이다.
이와 함께 서 의원이 『한보로부터 정치자금을 건네받을 당내 위치도 아니며 만의 하나 정 회장이 거액의 자금을 주겠다고 해도 나같은 사람을 상대하겠느냐』고 반문한 것과 다른 주장이 야당 일부에서 흘러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주장은 『증권감독원 간부와 한보철강 사장을 지낸 민자당 정책조정실 부실장 김 모씨가 중개역을 맡았다』는 등 구체적 내용을 곁들이기도 한다.
반면 서 의원은 『김씨가 부실장으로 부임한 이후 인사차 차 한잔 나눴을 뿐 당 내외에서 더 이상 만난 적이 결코 없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을 엮어 볼 때 한보의 로비성 정치자금과 관련된 민자당 연루설은 상반된 주장의 공방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진위여부를 확실히 가려 풀어야 할 주요이슈로 부각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민자당내에서도 ▲수서관련 당정회의에 서울시 담당인 제1,제2정책조정실장은 참석치 않고 건설부 담당인 서 의원(제3정조실장)만이 배석한 점 ▲비슷한 시기에 당에 접수된 수서 원주민 민원 26개 조합주택민원 중 전자는 기각되고 후자만 당정회의까지 이첩한 점 ▲민원처리 결과 회신이 당시 김용환 정책위의장 명의로 되는 게 당내 계통인데 서 의원 명의로 된 점 등은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 서 의원은 자신 명의의 공문회신이 「당규에도 있는 관례」라는 등 이 같은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자칫 김영삼 대표에게까지 비화될 수 있는 정치자금설에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서 의원의 해명과 무관하게 야당은 공문변조가 김동주 의원이 발설했다는 민자 정치자금 대목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제공된 자금규모가 5억∼10억(민주) 또는 30억(평민)이라는 수치까지 제시하는 실정이다. 김 의원이 자신의 발설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수서사건의 처리과정을 보면 한보자금 유입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평민·민주 의원들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김 의원이 하지도 않은 말을 장 전 의원이 스스로 만들어 유포할 수 있겠느냐』며 『김 의원 또한 아무리 곤경에 빠졌다고 짐작만으로 「김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서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희생양으로 걸려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따라서 사건의 열쇠는 일차적으로 정 회장과 김 의원의 「입」에 달린 셈이나 무엇보다 정 회장의 3백억 로비자금 행방을 밝혀내는 일이 시급하다는 게 정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검찰이 정치자금 부분을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켜 여전히 남게 된 수서관련 제반의혹도 결국 정치자금 제공여부 공방으로 옮겨간 수서국면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실체가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이유식 기자>이유식>
○8월 당정회의 역할/청와대·김 의원 관계유무·수준 초점/부총리 참석 이례·회의성격도 모호
지난해 8월17일 당정회의를 기록한 메모가 공개되면서 새로운 의혹으로 떠오르는 대목은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메모내용 그대로를 바탕으로 볼 때 그 첫째가 「청와대 의사」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의문이고 둘째 청와대측과 민자당의 당시 정책위의장이던 김용환 의원과의 관계유무,혹은 더 나아간다면 관계의 수준.
또한 8월17일의 당정회의가 부총리까지 참석한 고위급회의이기 때문에,민원처리를 위한 회의치고 이례적이라고 여기는 상식적인 의문 역시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지어 떠오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1일 민자당 기자실에 나와 회견을 자청한 김 의원은 전면 부인의 자세. 때문에 메모에 나타난 김 의원의 발언,즉 「청와대 의사 등,적극 지원」 대목은 전후가 크게 생략되는 바람에 입증의 여지가 줄어들게 되는 셈.
그러나 수서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 중 하나가 장병조 전 청와대비서관 이상의 고위인사가 개입됐는지 여부라는 점에서 메모에서 「청와대」가 출현한 자체로 의혹은 증폭된다.
김 의원의 부인내용은 『수서민원과 관련,청와대와 상의한 일도 없고,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일도 없다』는 것. 그는 이어 『내 상식으로 청와대가 당의 민원 처리에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도 아닐 것』이라고 말해 설사 청와대가 「관심」을 갖고 있었다해도 행정부처에 이를 표명했을 것이란 뉘앙스.
그렇다 해도 이 설명이 「청와대」가 기록으로 남게 된 점은 밝혀주지 못하는 형편. 이에 대한 김 의원의 주장은 자신과 청와대의 관계를 부인하는 강도에 비해 애매해진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민원서류에는 민원인들에게 유리한 내용의 관련문건들이 모두 첨부돼 있었고,이중 장 전 비서관이 서울시로 이첩한 민원서류가 맨 앞에 있었다』며 『관련 실무자들이 이를 모두 읽어본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내용으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검찰 조사 때도 검찰이 이 메모내용에 대해 물어왔으나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덧붙였으나 『나 자신도 청와대 민원서류를 읽은 상태라서 그런 오해를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당정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인사는 『검찰조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을 해왔다』며 『정확한 포현은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밝히고 있어 김 의원의 주장과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부분에 대한 김 의원의 정확한 발언내용이 어떠하든간에 최소한 회의분위기가 청와대를 의식하고 있었던 흔적은 이 메모가 시사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날의 당정회의는 수서민원이 결국 당이 나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조기종결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는 김 의원의 설명은 메모상의 결론과 다시 배치되고 있다. 김 의원은 『민원과 관련된 두 가지 법규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고,이런 문제는 원래 행정적으로 보완해 처리하는 것이 과거의 오랜 행정경험상 상례』라며 『민원인들의 요청이 계속돼 당이 빨리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 회의를 가졌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메모와 각종 문건에 나타난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은 특혜분양을 허용해주자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어 이 또한 회의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수서민원이 제기된 후 현지주민들의 반대민원이 민자당 민원실에 접수됐으나 이 민원은 정책위로 이첩되지 않은 채 민원실에서 자체종결한 사실이 드러나 민자당의 수서관련은 더더욱 명쾌한 규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조재용 기자>조재용>
○문서변조 검찰 제출/“과잉충성 실수” “비화차단 고의” 맞서/서 의원 명의 공문·적극 개입등 “의문”
민자당이 수서사건과 관련해 작성한 공문이 제각기 달라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민자당 공문은 3건으로 ①민자당이 주택조합에 처리회신을 보낸 뒤 민원국에서 보관중인 원본 ②서청원 제3정책조정실장이 지난 16일 검찰에 변조,제출한 사본 ③지난 4일 국회 행정위에서 평민당 양성우 의원이 공개한 서류 등이다.
이중 ①에는 지난해 7월20일 「개발에 대한 제반경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민원을 수용하여줌이 가하다고 사료된다는 내용으로 최고위원 및 대표최고위원 결재를 득함」이라는 부분과 제3정책조정실에서 민원수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이 명기돼 있으나 ②에는 두 가지가 모두 빠져 있으며 ③에는 당의 검토부분이 삭제돼 있다.
특히 ②의 경우 서 의원이 검찰에서 지난 15일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음날 검찰의 요구에 의해 제출한 것이어서 고의로 은폐·조작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당시 세 최고위원에게 엉뚱한 누를 끼칠까봐 민자당 관련부분을 삭제한 채 원본을 복사,보좌관을 통해 제출했다』면서 『사본과 함께 「원본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당정회의 결과는 같으니 양해해 달라」는 요지 부전지도 검찰에 함께 보냈다』고 고의성이 없음을 해명하고 있다.
서 의원은 특히 『사본제출 당시엔 이미 공문의 내용이 보도된 뒤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서 『원본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일 원본을 그대로 복사,다시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 의원 주장대로라면 당지도부에 의혹이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잉충성심」에서 비롯된 「실수」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만 보아도 당 쪽에서는 수서민원을 관장해온 서 의원이 수사기관에 서류를 제출하는 행위의 성격이나 결과 등을 그렇게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치밀하게 양해편지까지 동봉한 사실로 미루어 검찰수사가 서 의원,나아가 민자당지도부에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려는 고의성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원본과 다를 수도 있다는 편지를 받고서도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말썽이 나자 재제출받은 검찰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는 견해이다.
③의 경우도 의문의 대상이다.
서 의원은 『김정렬 보좌관이 작성한 초고로서 김용환 당시 정책위의장으로부터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폐기처분했다』고 설명했으나 김 보좌관은 『이 공문을 주택조합에 주었다』고 임의 유출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또 양 의원이 행정위에서 「대표최고위원 결재…」 등이 적힌 이 문서를 공개했을 당시 김영삼 대표측은 『김 대표가 결재했다고 하는 지난해 7월20일에는 부산 서구지구 당개편대회에 참석했었다』며 이를 부인했었다.
그렇다면 서 의원측은 김 대표의 결재를 받지도 않고 받은 것처럼 초안을 작성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김 정책위의장은 『대표 및 최고위원들에게 내가 구두로 보고했을 뿐 정식결재는 받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고 서 의원도 뒤 늦게 『김 의장이 중간보고한 만큼 긍정적으로 일이 처리된 것으로 간주하고 「결재」라는 용어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①의 경우 서 의원 명의로 발송됐으나 김 정책위의장은 『나로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의 대외 공문작성은 대표최고위원,아니면 최소한 사무총장 명의로나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고 장경우 사무부총장도 같은 견해이다.
그러나 서 의원은 『내 명의로 공문발송이 가능한지 여부를 관련부서의 「유권해석」을 받아 처리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민원이라면 우편으로 민원국에 접수돼 소관부서로 넘겨지는 관행과 달리 수서민원은 서 의원이 직접 받아 보좌관을 보내 접수했고 이어 서 의원이 이 민원을 다룬 사실도 의문의 여지는 있다는 견해들이다.<김종래 기자>김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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