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사건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는데 작금의 나라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굳어지기는커녕 갈수록 더욱 진탕에 빠져들 조짐이 보인다. 수서파문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다함께 겪고서도 누구 하나 제대로 갈피를 잡아가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왜 이처럼 엎친 데 덮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을까. 첫째로 수서파문의 엄청난 경고성 의미나 두려운 진상에 대한 인식이 도대체 결핍되어 있는 것 같다. 이같은 인식부족사태는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을 보좌하는 고위관료와 참모들,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등에 골고루 퍼져 있다 하겠다.구체적으로 엊그제 발표된 대통령의 유례 드문 사과성명을 봐도 그 충정은 이해되지만 줄기차게 지적돼 온 이번 파문의 책임소재를 좀더 분명히하는 데는 미흡했다. 수서 특혜사건의 성격과 규모로 보아 1급 비서관을 잘못 다스린 정도의 책임의식만으론 여론진화에 역불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수사는 성역수사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돼버렸으며,뒤이어 수습책의 하나로 나온 당정개편에서는 무슨 뒷말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마구 나라가 흔들리는 판국인데,그 수습을 빌미로 또 계파간의 권력싸움에 매달릴 정도로 한심한 여권의 인식인 것이다.
제1야당도 마찬가지이다. 청와대와 여권을 싸잡아 자신있게 성토하려면 먼저 한보로부터 받은 돈의 불법성 여부를 충분히 따지고 이에 대한 당의 반성과 근신이 앞장서야 하는 법인데 시간에 쫓기던 검찰의 1차발표만으로 마치 뇌물수수의 면죄부를 받았다는 듯 행세하려 해서야 국민들이 납득하고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 행정부 책임자들의 언행도 국민들을 역겹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파문의 책임을 지고 그만둔 시장이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투의 발언을 하고 떠나더니,새로운 임명된 건설부 장관 역시 『건설부의 유권해석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아래가 너나없이 잘못이 없다고 한다면 수서의혹은 누구의 잘못으로 발단됐다는 말인가.
관계자들의 이같은 발언은 사건을 더욱 왜곡시키고 사태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키며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둘째 이처럼 한심한 사태인식이 깔려 있으니 결국 모호한 책임규명과 나열식의 알맹이 없는 수습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로선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계속 된다고 하니 그쪽에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정치쇄신을 강조한 대통령의 특별담화도 그 취지는 시의에 맞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선거공영제,정치자금법,정치윤리 실천을 위한 국회법 개정 등이 그 동안 거론돼 왔을 뿐 실천되지 못했던 것들이어서 수습책으로서의 비중이 크게 전달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자제선거 등에서 참신한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정계 개편방안 등도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지금이야말로 바쁜 길도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파문이 두렵다고 진짜 짚을 곳은 빼먹으면서 허겁지겁해서야 오히려 길이 더디어진다. 지금이라도 빼먹은 것을 차근차근 되짚고 확실히 다져가며 파문처리와 수습에 나서는 게 가장 확실하고 국민적 호응도 얻어 결과적으로 빠른 길이 되는 것임을 강조해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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