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선거 「범국민 감시」 필요”/부정 막아 유능한 후보 당선케/시민단체 연대 고발활동 펴자/언론·지식인도 올바른 정치교육담당땐 선거혁명은 시간문제예능계 입시부정사건이 사회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하더니 「뇌물외유」를 다녀온 국회의원들이 급기야 검찰에 구속되었다. 「수서특혜사건」 충격은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가히 바닥 끝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들 사건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냉소가 사회질서의 기반을 뒤흔들고 통치체제의 기초를 위협할 만한 위기로 돌변하자 정부는 성역(?)없는 조사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뇌물사건과 수서사건은 국민이 보기에는 여야가 공범이요,함께 타도되어야 할 지탄의 대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 판국에 당장 3월에 지방선거가 이루어지면 여야 모두가 손해만 보게 될 것이란 약삭빠른 계산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3월에 지방의회선거를 치르겠다』던 공약을 팽개치고 선거를 5,6월로 다시 미루는 데 여야가 서로 손발을 맞추는 모양이다.
독재와 권위주의가 스스로 민주와 자유의 옷을 갈아입은 거듭남을 하지 못한 채 국민들이 분연히 일어나서 이를 밀어붙이고 몰아낸 예가 역사에는 비일비재하다. 낡은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귀가 먼 기성세대와 그 정치인들은 결국 민중의 집합적 분노로 표출되는 「운동정치」나 아니면 국민의 투표로 전환되는 「선거정치」에 밀려서 역사의 후면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부패와 부정의 구조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지배권력은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는데도 구태의연하고 안일한 방식에 안주하는 권력이나,사회변혁을 발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혁명에 의해서 밀려난다. 정녕 우리 시대의 정치는 민주적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21세기를 또다시 암울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맞이할 것인가?
지난 87년의 6월항쟁은 시민사회의 성장과 선진화를 가로막는 제도권력에 대하여 국민들이 강력한 제동을 걸고나온 항거였다. 그 후 한동안 우리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후진된 정치를 떠받쳐 올리는 민주화의 시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성장하는 시민의식에 밀려서 기성의 제도와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합의를 만들어내던 시기는 종지부를 찍고 그 대신 시민들이 사회적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 각 부문의 요구가 정치권에 표출,전달되고 이것이 제도정치에 반영되는 과정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제도권력은 여전히 시민사회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때때로 제도정치의 궤도이탈에 결연하게 맞서서 거부할 태세를 갖추거나 자구책을 강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대부분 스스로 정치세력으로 조직화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하거나 횡적 연대를 이루지 못한 채 산발적인 시민운동을 펴나가는 데 그치고 있다.
낡은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권위와 질서를 새로운 것들로 대체하는 과정에는 혼란과 갈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해방 후 근 반세기 동안이나 우리의 역사를 속박해왔던 권위주의적 통치구조가 물러난 자리에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 각 부문의 민주적 역량으로 다시 채워져야 한다. 그러나 제도정치는 아직까지도 권위주의의 타성을 안고 있으며,민주정치를 정착시켜가는 데 필요한 개혁과 정책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야간,정부와 사회간,집단과 집단간에는 여전히 이념적 장벽과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때때로 과격주의적 주장,집단주의적 행동,폭력주의적 수단들이 난무하는 변혁기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고비에서 올해와 내년에는 지자제선거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종합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정치적 행사들을 치르게 되어 있다. 이같은 상황을 앞두고 우리의 정치가 당장 풀어가야 할 열쇠는 무엇이며,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다가오는 선거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변혁의 도도한 흐름을 구태의연한 발상과 해결방식으로 대처하려는 정치인들이 다시 득세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치러야 한다. 60년대 이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선거는 몇 사람의 주역들이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조직과 금력을 독점해온 파행적 과정을 되풀이해왔다. 이들은 정치엘리트 충원의 수문장들로서 선거법과 경쟁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제정,운용해온 장본인들이며,새로운 시대의 등장과 새 지도자의 출현을 막아왔다. 과두적 보스정치를 청산하려면 선거를 국민적 통제장치하에 둘 수 있도록 법과 규칙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지자제법은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과두독점제 정당들을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할 소지를 안고 있으며 노동자,농민,신세대,여성 등 지금까지 정치적 대표성에서 소외되어왔었던 집단의 대표권을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시민사회와 정치제도간의 괴리가 메워지려면 정당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정당은 몇몇 정치인들의 배타적 모임으로 이루어지고 이들의 사당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폐단을 시정하려면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국민과 유권자들에게 개방되어야 하며,각종 시민단체의 운동과 노동조합 등의 조직과 활동이 어떤 형태로든 정당구조와 의미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당법과 선거법은 유권자의 통제가 거의 미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며,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활동과 지식을 쌓은 인물들이 입후보하여 당선되는 길을 차단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회는 생활행정을 다루는 기관이다. 지방의회 의원의 선출과정에서는 생활단위의 성격에 맞게 중앙당이 선거과정을 주도하기보다 주민들의 선택의 여지와 자치를 대폭 허용하고,소수집단들의 이해관계도 제도권에 반영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중선거구제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경쟁질서가 보장되지 않는 선거는 무의미하다. 합리적인 선거과정이 이루어지려면 선거법이 현실에 맞게 제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자금의 공개적 조성과 균형있는 배분,선거공영제 실시,선거과정에 대한 국민적 감시의 허용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선출되고 정치쇄신의 계기를 이루는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과 제도개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하나하나 유권자혁명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어야 하며,민주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유권자들의 그릇 크기 만큼 거기에 담겨지는 내용이 결정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 안에는 지금 선거혁명에 기대를 한번 걸어볼 만큼 각종 시민운동이 성숙해가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명선거를 위한 각종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각급 단체와 운동주체들-종교단체운동,공해추방운동,여성운동,경제정의실천운동 등-이 새로운 시민연대운동을 발족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인은 정치적 중간집단을 거쳐야 그 힘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다. 유능한 인물을 선발하여 선거에 내보내고 이들이 당선되도록 지원하는 일도 각 사회단체와 시민조직들이 연대하여 전개할 필요가 있다. 불법,타락,금권선거를 방지하고 선거감시와 고발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힘을 합하고 조직화하여야 한다. 공명선거를 실시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데도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시민적 역량을 조직화하고 제도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여기에다 언론매체와 지식인들이 기득권의 옹호에 치중함이 없이 유권자들에 대한 정치교육을 올바르게 담당해나간다면 다가오는 선거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조용한 혁명」으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를 문명사에서 뒤쳐진 채 보낸 결과로 우리는 20세기를 식민지 상태하에서 맞이하였고,지난 세기의 대부분을 그 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에 소진해버린 셈이다. 광복과 분단,전쟁과 소요로 점철되었던 지난 시대였지만,다행하게도 우리는 이제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우리는 1991년을 선진 민주한국을 이룩하고 통일의 길을 여는 기점으로 잡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엄격한 선거관리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표명과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유권자의 거듭남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남들이 피로 성취한 혁명의 길을 기필코 보다 「평화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달성해야 한다.
□안청시 서울대 교수·정치학
<필자약력>필자약력>
▲서울대 학사·석사
▲미 하와이대 박사(1977)
▲미 프린스턴대 초빙교수(19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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