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핵심이 관련된 정치성 사건수사에서 검찰이 그간 한계를 보여왔던 역사적 관행을 본란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이번 「수서의혹」 사건에서도 검찰의 입장은 예외가 아님이 드러났다. 검찰이 정부의 한 부서에 속해 있고,그 장이 청와대 참모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다소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했으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 내기에는 「때도 이르고 역부족이 아닌가」하는 점을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아침이었다. 검찰의 수사전모 발표는 추상 같은 수사소추권의 발동의지 대신 수사가 축소·제한된 데 따르는 비난과 의문을 겨냥한 해명과 변명에 바쁘다는 인상을 주는 데 그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검찰수사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며,수사완료 시기를 기점으로 추진될 정국 복원의 전망 역시 안개 속에 잠겨 버렸다.우리는 이 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서의혹」이 정치와 관련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정리해 둘 필요를 느낀다.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제도정치권의 도덕성·윤리성과 함께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3공 이래 심화돼 가기만 하고 있는 빈부의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발전으로 인해 먹을 것(식)과 입을 것(의)이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빈부의 문제는 상대적 빈곤형태가 돼 자는데(주)로 쏠려가고 있다. 집이 있느냐 없느냐 아니면 작은 집인가 큰 집인가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6공 들어 서민주택을 그렇게 많이 짓겠다고 공약한 것도 폭발하는 국민들의 집에 대한 욕망에 부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엄청난 주택수요를 충족시키려면 공영개발방식을 통해 대단위 단지를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청와대 참모와 관계부서 그리고 민자당과 평민당이 갑자기 어느날 한보와 3천여 세대를 위해 특혜공급이라는 불법예외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6공의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의 야당성까지 함께 흙칠을 당하게 되었다.
6공은 언론이 꽃피기 시작한 민주주의 시대라고 했다. 그러나 정·경·관이 「수서특혜」를 획책하면서 여론이나 언론에 신경을 쓴 흔적은 없다. 공영개발의 대원칙을 짓밟는 것이 여론의 열화 같은 지탄대상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없다.
그들은 청와대가 알고 당정이 합의하고 평민당이 보증을 섰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것이 현 정치권의 언론관이며 여론관이란 말인가.
이번 사건은 의원들의 뇌물수수액수가 크다는 게 특징이다. 이것도 정·경·관의 유착으로 말썽의 소지가 없게 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받아 챙긴 교활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가 있다. 특히 정치음해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해서 탈이었던 평민당 수뇌부가 겁도 없이 건설업자의 돈을 덥석받아 그대로 소속의원들에게 뿌렸다는 데 이르러서는 열린 입이 닫히지 않는다. 언제부터 우리의 야당이 이렇게 분별력과 조심성을 팽개쳤던가.
「수서의혹」이 터진 뒤 국회의원 하려면 월 1천∼2천만원의 경상비가 필요하다더라는 정장론 같은 것도 나왔다. 그것도 웃기는 얘기다. 월수 1백만원 이하의 국민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국회의원만 선진국 국회의원처럼 잘 살아야 할 특권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이번 사건으로 6공 정부뿐 아니라 야당까지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적색경고를 받은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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