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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철군제의 아랍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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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철군제의 아랍 시각

입력
1991.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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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군사패배」서 「정치승리」 이끌기/사실상 「항복」선언 평화제스처/“파국만은 막자” 아랍지지 노려/소의 “미 독무대 허용않겠다” 언질작용 소문도「잔인한 속임수」인가 「진정한 협상안」인가.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걸프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쿠웨이트로부터의 철군의사를 밝히고 나섬으로써 그의 진의를 둘러싸고 추측이 무성하다.

아랍의 정치분석가들은 후세인 대통령의 철군용의 표명이 다국적군과의 대결에서 확실시되는 군사적 패배를 정치적 승리로 이끌어보기 위한 후세인 특유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라고 파악하고 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번 발표에서 자신이 그토록 금기시하던 「철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대해 사실상의 「조건부 항복」을 선언했다는 게 이들의 일반적 분석이다. 이같은 관측은 사담·후세인의 철군시사가 다국적군의 지상전 돌입이 임박해오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요르단의 암만에 주재하는 한 서방외교관은 『사담·후세인은 지상전의 발발로 이번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벗어나기 전에 U턴을 하기로 결심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후세인이 자신의 제의를 미국이 일축하리라는 사실까지도 고려하고 이번 제안을 내놓았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과거 후세인의 평화제스처가 그랬듯이 이번 제안도 그로서는 손해볼 게 없는 장사』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후세인은 아랍세계에 예측불허의 대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지상전으로의 확전만은 막아야 한다는 아랍권의 염원을 수용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아랍의 지지를 획득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후세인의 이번 제안이 그 동안 아랍이나 제3세계에서 무수히 제기돼온 각종 평화안을 수렴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아랍권에서는 특히 후세인의 조건부 철군용의 발표가 다니엘·오르테가 전 니카라과 대통령이 15일 상오 암만에서 발표한 6개항의 평화안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르테가가 이날 암만에서 요르단·리비아·알제리·잠비아·예멘 등의 대표들이 참석한 소위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운동」이라는 회담에서 제안한 이 평화안은 이라크 혁명평의회의 발표내용과 거의 일치,사전에 이라크와 합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르테가가 제시한 6개항의 평화안은 ①이라크가 중동평화조치를 제안함과 동시에 다국적군은 철수한다. ②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조치 및 기타 제재조치들을 철회하는 한편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 이후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③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 철수를 요구하되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할 경우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와 같은 조치를 강구한다. ④유엔 안보리는 회교 및 기독교 성지를 보호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안전을 보장한다. ⑤제3항과 4항을 실행하기 위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개시와 동시에 중동문제에 관한 국제평화회의를 개최한다. ⑥중동문제의 전반적인 해결을 위해 이 지역을 「대량살상무기 금지구역」으로 선포하는 한편 중동을 완전 비무장화한다는 것 등이다.

오르테가 전 대통령이 지난 3개월반 가량의 중동순방 외교를 통해 마련한 이 평화안은 최근 야세르·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통해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달됐으며 후세인은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제안은 특히 얼마 전까지도 이라크의 맹방이었던 소련측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주목을 끌고 있다.

미하일·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특사인 예프게니·프리마코프를 바그다드에 파견해 걸프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왔다. 고르바초프는 후세인 대통령에게 쿠웨이트로부터의 철군을 종용하면서 걸프전쟁 종식 이후 『이 지역에서 미국의 독무대를 허용치 않도록 협조하겠다』는 언질을 했다는 소문이 요르단에는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후세인의 이번 철군용의 발표과정에 「모스크바 커넥션」이 작용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는 향후 중동지역에서의 안보체제결성과 관련해 크게 주목되는 대목이다.

현재 반이라크동맹에 가담하고 있는 이집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8개국들이 구상하고 있는 중동의 전후 안보체계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걸프만지역에 군대를 상주시키며 미·영·불 등 다국적군 주도국들이 해군을 구성해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으로서 소련의 역할을 배제하고 있다.

이같은 점에 비춰볼 때 17∼18일로 예정된 타리크·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의 소련방문 기간중에 두 나라가 『중동지역에 대한 서방의 헤게모니 장악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의견의 일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번 철군제의를 통해 자신의 패배를 사실상 시인하면서도 아랍­이스라엘분쟁의 연계를 재차 들고나옴으로써 자신이 원칙에 충실한 아랍민족주의자임을 과시했다. 그는 또한 지상전 돌입이라는 파국의 상황을 앞두고 자신이 평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애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담·후세인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대서방 항복문서를 중동평화를 위한 일대 용단으로 분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한마디로 속임수 반,협상안 반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암만(요르단)=이상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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