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탈세,뇌물은 한국적 비리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다. 수서와 범양,영동 명성 이·장사건 등 2∼3년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대형 사건들은 그 전개돼 나가는 양상이나 핵심적인 구성요소·성격 같은 것들이 판에 박은 듯 서로 닮았다. 모두 한국형 복합비리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항상 정치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알 만한 정치인이나 실력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장·차관급을 포함한 고위관료들이 연루되고 은행돈의 유용,제도상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탈법과 규정위반,세금포탈,천문학적인 액수의 특혜와 투기 이익,그 검은 돈으로 광범하게 뿌려진 뇌물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사건이 일단 터졌다 하면 그 전개과정이 어떻게 되고 결말이 어떻게 날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주기적인 반복학습을 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먼저 전 국토가 개탄과 탄식의 소리로 뒤덮이면서 나라 전체가 난리를 만난 것처럼 요란해지고 국민적 공분이 한껏 고조된 뒤 가열된 여론에 떼밀리 듯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이루어지고 서두른 듯한 수사종결과 함께 구속,세금추징,해당기업의 뒤처리에 이어 신속한 망각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부조리사건을 처리하는 우리식 수순이다.
지금은 흥분된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겠지만 이번 수서사건 역시 종결 후 몇 달만 지나면 영동이나 명성,이·장사건처럼 『그냥』 잊혀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2∼3년의 주기를 기다려 또 다른 사건을 맞게 되고 그런 식으로 과거 수십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또 세월이 흐르고 한국형 비리의 뿌리는 세월과 함께 더 깊고 넓게 자라고 퍼지게 될 것이다. 3공비리 5공비리 6공비리하는 식으로 비리의 연륜만 쌓게 되는 것이다.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흥분과 규탄이 아니다. 수서 자체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수서를 통해 「또」 나타난 한국형 비리의 기본적인 구성요소,그 성격과 구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일이다.
흥분된 여론으로 규탄 처단을 외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라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리의 뿌리를 잘라 내거나,그게 일시에 어려운 일이라면 약화시키고 더 자라지 못하게 할 어떤 방도를 강구하는데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대형비리사건의 습관적 반복을 막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라 전체가 흥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 처벌됐지만 비리의 나무는 계속 자라고 그 개선을 위해 우리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사건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는 현실이 흥분→처단→망각으로 이어지는,그래서 만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는 우리의 허무한 부조리공식을 개탄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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