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불신과 냉소의 대상이 되어오던 정치권이 뇌물외유사건과 수서 특혜 등 연이은 비리·의혹의 노정으로 파국의 위기로까지 몰리게 된 듯한 요즘 분위기이다. 정치권의 부정이나 부조리사건은 물론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고 벌써 3공 말기서부터 5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횡행해오던 일종의 「관행」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필연적으로 부패를 배태할 수밖에 없었던 절대권력 아래서는 흔히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악과 부패에 대한 일반의 감각을 무디게 하게 마련이다. 작은 부패는 큰 부패의 그늘에 가려 부패같지도 않게 여겨지기 일쑤이며,그런 과정을 밟는 동안 부패는 관행화하고 부패에 관여하는 사람이나 그를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일종의 부패면역성 타성같은 것을 심어주게 된다. 말하자면 부패에 대한 둔감증이 생리화하고 마는 셈이다.
6공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청산과 개혁을 다짐하고 나선 정부는 이러한 지난날의 악의 유산을 누구보다도 직시하고 그의 청산없는 개혁이나 새출발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공이 출범한 지 3년이 되는 지금 과거의 그릇된 악의 유산은 오히려 지난날보다 더 확산되고 있는 듯한 감을 주고 있으며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심화됨으로써 전례없는 위기감마저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감이 정치권의 파국으로까지 이어지리라고는 믿지 않으며 또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정치권의 파국은 곧 이 나라 정치체제의 안위에까지 직결되는 것이므로 결코 그러한 사태가 초래되어선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정치권의 근원적인 쇄신작업 없이는 이 나라의 정치가 더는 존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정부나 입법부,고위관리나 정치인 누구나를 막론하고 지난날과 같은 타성에 젖은 둔화된 윤리관과 비정상적인 정치행태를 가지고는 이 이상 나라를 지도하고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음을 이제 통감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믿어진다. 말만의 성찬으로 국민이 속아넘어갈 시기는 이미 지났다. 과거의 환상을 그냥 안고 안이한 방법으로 사태를 미봉하려 드는 정치행태와 행정운용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가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국민이 현재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의식과 배신감·거부반응은 결코 극복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쇄신의 의지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파국을 모면할 길은 막연하다는 엄숙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경고해두고 싶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정치권의 부정과 비리가 이만큼이라도 노정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난날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성립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련의 비리사건들은 악의 유산을 청산하고 나쁜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유의 한 과정이라고 파악될 수도 있을 줄로 안다. 과거에는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진실이 이젠 여지없이 폭로되어 나올 수 있는 시대적 조류의 변화를 우리가 아직 희망을 걸 수 있는 근거와 요인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고 정치쇄신을 위한 자체정화의 가시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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