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안돼 땅투기·탈세창구로/은행대출금 빼돌린 후 정 회장에 “대여”… 로비사용/74년 설립… 직원 10명 불구 지금도 가장 애지중지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이 거액의 로비자금을 조성하고 땅투기로 재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한보상사라는 정 회장 개인사업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감사원 등의 조사결과 드러나고 있다.
정 회장은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개인사업체를 통해 부동산 정보수집과 땅투기를 하고 이 회사를 통해 수백 억원의 은행대출금을 개인사업자금으로 빼돌려 로비에 쓰고 했기 때문에 조세행정상의 규제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한보상사의 역할은 크게 ▲정 회장의 사설복덕방 ▲정 회장 개인의 비자금 등 재산관리 ▲계열사 자금줄 ▲탈세의법률적 근거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감사원은 한보철강 및 주택 등 계열사가 주거래은행 등으로부터 총 5백81억원을 대출받아 이 중 4백18억원을 한보상사를 거쳐 정 회장에게 대여금 형식으로 건너가게 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같은 감사원 조사결과는 한보상사가 정 회장 개인의 자금줄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조사에서는 은행대출금 중 4백18억원만 전해진 게 확인됐지만 정 회장이 수원골프장·등촌동 택지 등 여러 건의 부동산 거래에 따른 차익도 이 회사를 통해 쉽게 거둬갈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회사는 한보그룹의 자금운용에 있어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한보가 30대 재벌로 은행감독원의 여러 가지 여신관리상 제약을 받게 되자 이 제약을 받지 않는 개인사업체를 만들어 급할 때는 대여금 형식으로 계열법인들과 자금을 주고 받으며,그룹 전체의 과부족을 그때그때 해결해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관계자들도 한보뿐만 아니라 은행의 여신제한을 받는 50대 재벌(계열기업군)은 대부분 각종 법령 제도상의 규제를 덜 받는 개인사업체를 하나 둘 정도는 세워놓고 오너의 재산관리나 자금순환의 통로로 활용하고 있는 게 관례라고 설명했다.
감사원 감사 및 국세청 세무조사에 참여했던 실무책임자들은 『한보상사는 정 회장의 개인복덕방으로 뗄래야 떼일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정 회장이 「땅의 귀재」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점찍은 땅이 녹지나 감자밭·논으로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이라도 나중에 어김없이 택지로 개발되는 것은 한보상사의 정확한 정보력과 판단력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 회장이 74년에 한보주택보다 먼저 한보상사를 설립해놓고 땅 장사에 나선 것을 봐도 이 회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설립 직후 74년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택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빼내 땅사기에 나서 결국 79년에 당시에는 재벌급 건설업체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4천4백여 가구의 대단위 아파트를 한보주택이 성공리에 분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한보상사는 그 이후에도 서울 등촌동 택지·수원 골프장 매매 등 정 회장이 거래한 거의 모든 부동산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수서택지 매매과정에서도 한보상사는 처음 매입부터 주택조합 매각에까지 모든 업무를 총괄한 실질적인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한보상사는 이 같은 부동산 거래와 로비자금 조성 외에도 세금을 피해나가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은행대출금 4백18억원을 정 회장이 한보상사를 통해 대여받아갔지만 이에 따른 이 회사의 사업소득은 늘거나 줄지 않고 단순한 전달경로 역할만 했기 때문에 탈세도 아니고 따라서 과세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정 회장 개인의 탈세에도 이 회사는 역할을 해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89년 귀속분 소득세 신고」에서 정 회장은 ▲배당소득 48억2백만원 ▲근로소득 1억2천5백만원 ▲부동산 (임대)소득 4백만원 등 총 49억3천1백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이 회사를 통한 사업소득은 한푼도 없다고 신고한 것이다.
정 회장은 이 회사를 통해 모든 부동산 거래를 하고도 상사의 사업소득은 없다고 신고해내야 할 개인소득세를 줄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정 회장은 한보상사를 징검다리삼아 한보철강·주택 등 수백억 원의 법인자금(은행대출금이나 이익금까지)을 주머니돈처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 회장은 지난 74년 계열사 중 최초로 설립돼 결국 오늘날 한보그룹의 모체가 된 한보상사의 종로건물을 지금도 제일 애지중지하고 있으며 현재 직원이 10명에 불과한 한보상사를 그룹주력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이백규 기자>이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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