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없는 정파 혹은 계파싸움으로 불신의 늪에 빠져 있던 정치권이 올 들어서는 잇달아 터지는 「사건」에 이리 쫓기고 저리 몰리고 있다.의원 뇌물외유의 돌풍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는가 했더니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수서사건으로 일격을 맞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바람에 국사를 진지하게 논하거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의 본령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지난번 임시국회만 해도 소집목적이던 개혁입법협상의 마무리가 허공에 떠버렸다.
마치 한겨울의 소방수처럼 자신들이 발화시킨 이 불 저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보니 의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이 왜 생겼을까.
그 배경과 원인을 정가에서는 4·26총선 후 탄생한 여소야대와 3당통합에서 찾으려는 시각이 많아 관심을 모은다.
총선 직후부터 5공청산의 칼날을 휘두르던 「대야」가 자기도취에 빠져 비리에 노골적으로 물들었으며,3당통합 후에는 새로 출현한 「거여」에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버릇이 되살아났다는 분석이다.
결국 여나 야나 가릴 것 없이 비리에 관한 한 자제력을 잃어버린 셈인데 이 틈에 정부부처 등 각계가 너도나도 끼어들어 비리가 대형화·집단화됐다는 지적도 곁들여지고 있다.
그런 분석이 얼마나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정치에 대한 기존의 기대치가 여지없이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우려를 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치권의 무력화는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해줄 마땅한 곳이 없다는 불안감,나아가서 일종의 체제위기의식으로 이어질 소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것은 정치권 자체의 자세다.
작금의 상황과 그것을 배태시킨 배경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뼈아프게 자성하기는커녕 「관례」를 들먹이고 「과장보도」라며 언론에 화살을 돌리며 핵심을 비켜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의 도덕적 불감증이 자체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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