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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물 맑아야 윗물도…/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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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물 맑아야 윗물도…/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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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 국면한 국회의원이 폭력조직 우두머리를 봐준 사실이 들통나더니 지체높은 판·검사님들이 폭력조직 우두머리들과 술자리를 같이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존경받는 예술가요 대학교 선생님들이 몇백만 원에서 억대까지의 돈을 받고 「부정입학」을 시켰다는 사실이 들통나 한바탕 세상이 떠들썩했다.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이 업계의 돈으로 해외 나들이를 즐겼다고 해서 또 한바탕 세상이 떠들썩했던 게 엊그제 일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다 댄다면 지금 왁자지껄한 소위 「한보주택사건」은 이 나라 공공제도의 어느 한 구석이 아니라,행정부 국회 업자,게다가 주택조합이라는 이름의 시민들이 얽혀서 엮어진 「비리의 종합판」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거의 이루어질 뻔했던 사건이다.

지금도 사건에 관련된 공직자와 업자와 시민들이 저마다 합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서지구 택지 특별공급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는 그야말로 절묘한 예술품과도 같다. 다만 그 결과가 공영개발의 원칙으로 봐서 있을 수 없고,있어서도 안 될 일로 낙착될 뻔했다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지난해 정부가 「총체적 난국」이라 했다가,아니라고 뒤집는 바람에 입씨름이 붙었었다. 수출이 부진하고,여기저기서 범죄가 날뛰는 것을 두고 총체적 난국이냐 아니냐 입씨름이 붙었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연거푸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이어진 끝에 이제 「비리의 종합판」이 터졌다. 이 나라 이 사회는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송두리째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만큼 됐다. 이것이야말로 영락없는 총체적 위기다.

○5공형 비리 재판

수서지구 땅파동의 출연자들을 보고 있자면 흡사 5공비리 청문회를 보는 것 같다. 한보그룹의 회장은 청와대의 장병조 비서관을 『잘 모른다』고 했는데,장 비서관은 『잘 아는 사이』라 했다.

녹지대를 헐값에 사들여 주택지 노다지판으로 만드는 「신통력」을 발휘해온 「한보」는 몇십억 몇백억의 은행융자를 받아 땅을 사모았다 한다. 또 땅팔아 갈퀴질하고도 백 몇십억의 세금을 내지 않는 탈세를 했다 한다.

「권세」를 끼지 않고도 이런 땅짚고 헤엄치기식 갈퀴질이 가능했을까? 청와대의 비서관이 끼였다는 것은 이런 의혹을 사기에 안성맞춤인 배경이 되기 십상이다. 민자당의 한 국회의원은 모모한 수석비서관이 끼여 있다고 말했다가 취소했으니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이번 일은 건설부와 서울시,다시 말해서 행정부의 소관사항이다. 여기에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끼여든 국회는 말하자면 잘못 끼여든 들러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끼여든 이상 책임은 나눠 져야 할 것이다.

애초에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녹지대에,경위야 어떻든 땅을 사겠다고 나선 주택조합들에도 문제는 있다. 5공 때부터 권력층을 끼고 「녹지 킬러」의 명성을 얻은 「한보」를 믿은 것도 잘못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어엿한 정부기관이요 금융기관의 주택조합 치고는 떳떳한 일이 못된다. 물론 개개의 조합원 중 상당수는 억울한 선의의 피해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수서지구 땅파동은 아무래도 「5공형 비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난날과 달리 감쪽 같이 짜여진 드라마가 아무 탈없이 「무사통과」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6공화국의 현실이다.

○누가 누구를 꾸짖을까

지금 세상에서는 「도덕성의 마비」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합창처럼 들리고 있다. 또 잘못이 있다면 「성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정 수사」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수서지구 땅파동 관련자들을 떳떳이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과연 누가 누구의 「도덕성」을 마치 「나는 깨끗하다」는 식으로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우리는 「5공 청산」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제 와서 보자면 8년 동안 「이틀에 1억꼴」로 갈퀴질했다는 5공비리를 철저히 청산했던 들 오늘날 수서지구 땅파동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권세와 업자와 공공기관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뇌물 좋아하고,공짜 좋아하고,땀 흘리기보다 거저 떨어지는 돈벼락 좋아하는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선거 때마다 돈 봉투나 선물꾸러미를 놓칠세라 아우성치고,자기 땅값 오르라고 아리송한 지역개발사업 공약에 놀아나고,내고장 내붙이만 따지는 유권자가 오늘날 이꼴을 만든 장본인이다.

누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가? 개명천지 민주시대에는 거꾸로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이 맑다」고 해야 한다.

국민이 5공형의 비리에 중독돼 있는 한 이 나라의 도덕성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비리 백화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현명함을 배워야 한다. 관련 공직자들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신뢰와 도덕성의 전면적 붕괴를 막도록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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