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지더라도 「아랍영웅」 기대/이란안 「팔」 문제등 없어 불만도/중재노력 일단 주춤… 대규모 지상전 격돌 불가피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다국적군의 일방적 공세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전쟁을 통해 정면돌파할 결심을 굳힌 것이 분명해 보인다.
후세인 대통령은 앞서 하셰미·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알리·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이라크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논평하면서 『우리는 사담의 메시지에서 평화적 해결가능성을 배제치 않고 있으나 상대방이 전쟁을 고집한다면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하듯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라크의 전쟁의지를 찬양하면서 승리를 재다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이란과 비동맹국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돼온 중재노력은 일단 주춤하게 됐으며 쿠웨이트의 탈환과 방어를 둘러싼 지상전은 불가피해졌다.
개전 26일째를 맞고 있는 다국적군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완전 장악하고 이라크군 전력의 40% 정도를 파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전황 속에서도 이라크가 외교적 중재안을 거부하고 파멸적 전쟁을 고집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이란의 이번 중재안이 이라크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본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도에 의하면 이란의 중재안은 ▲이라크군과 다국적군의 동시철수 ▲중동평화회담 개최 ▲중동 주요국가간 불가침협정 체결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이슬람기금 설치 ▲라프산자니 대통령의 바그다드방문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제안은 그 동안 이라크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온 ▲다국적군 철수 ▲이스라엘 점령지문제 연계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중단 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문제를 이번 사태에 끌어들여 아랍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후세인으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이란의 제안이 불만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후세인 대통령이 전쟁의 승패보다는 정치적 승리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중동문제 분석가들은 후세인이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아랍인의 긍지를 높여준 영웅으로 추앙받을 것이며 후세인의 의도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분석은 후세인의 10일 대국민 연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세인은 이 연설에서 『이라크는 3주일 이상 계속된 다국적군의 공습을 견뎌냄으로써 이미 승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승리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아랍권의 분위기도 후세인의 이런 판단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층 고조되고 있는 아랍권의 반서방 감정은 지난 6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노골적으로 이라크를 지지하고 나선 사실에서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또 다국적군에 군대를 파견한 모로코에서는 지난주 56년 독립 이후 최대규모의 친이라크 대중시위가 벌어져 하산 왕정이 휘청거리고 있다.
아랍권의 반서방 감정은 후세인의 장담대로 서방 각국에 대한 테러로 이어져 다국적군에 가담한 서방국가들을 괴롭히고 있다.
걸프전 이후 세계 각국에 있는 서방시설에 대한 테러사례는 이미 수백 건을 헤아린다.
앞으로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져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아랍권의 반응이 더욱 격렬해질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후세인이 끝까지 항전을 고집하는 또다른 이유는 다국적군이 쿠웨이트를 탈환한다 해도 이라크까지 진격해 들어올 수 없다는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미국은 이라크 본토에 대한 지상공격은 배제하고 있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따라서 내부 쿠데타나 암살같은 사태가 없는 한 후세인 정권이 붕괴될 위험은 별로 없는 셈이다. 이렇게 후세인 정권이 온전한 상태에서 종전이 된다면 이라크는 군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동의 대부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편 이번의 이란과 이라크 접촉과정은 최근 이라크 공군기의 이란 대피사태 이후 의혹을 샀던 이란이라크 밀약설을 상당부분 해소시켰다는 점에서 또한 관심을 끌고 있다.
요컨대 이라크 공군기의 대피사태가 오래전부터 양국이 합의한 치밀한 사전각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이번 일로 그 근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걸프전의 향방은 앞으로 더욱 많은 피를 흘려야 분명해질 것으로 우려된다.<배정근 기자>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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