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철저한 비밀로비… 수사 어려워/뇌물수수 관련자 확대선에 최대 고심/“규명미흡 때는 여론 몰매” 걱정수서택지 특혜공급사건을 내사해오던 검찰이 7일 감사원의 특별감사와는 별도로 본격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온갖 의혹을 증폭시켜온 한보그룹의 특혜시비전말이 곧 드러나게 됐다.
정구영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감사원이 감사를 완전히 끝내고 정부에 보고를 마친 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시기적으로 너무 늦다』며 『구태여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기다릴 필요없이 검찰이 독자적인 증거수집을 통해 사법처리 대상자를 가려나갈 것』이라고 말해 감사원이 범법사실을 통보해올 경우 수사에 나서겠다는 당초의 방침을 크게 앞당겼음을 밝혔다.
정 총장은 또 『이번 수사의 중점대상은 한보측이 택지를 특혜공급받는 과정에서의 행정법규 위반 등 불법행위 여부와 관계공무원들에 대한 로비성 뇌물제공부분이 될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는 위법사실에 대한 사법처리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강조,검찰이 이미 관계자들의 혐의사실을 상당부분 포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 감사원의 특별감사 이전부터 건설부,서울시,국회 등 관련부처에서 각종 자료를 넘겨받는 등 기초적인 내사작업을 은밀히 진행해온 점을 감안할 때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한 뒤 사법처리의 수순을 밟는 시기는 의외로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대상은 ▲택지 특혜공급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외압에 따른 직권남용부분 ▲로비성 뇌물살포 ▲택지개발의 사전누출경위 ▲한보그룹의 탈세 등 5∼6가지 비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일반국민은 물론 검찰내부에서도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뇌물수수 의혹부분으로 한보측의 청탁성 검은 돈이 어느 경로로 어느 선까지 흘러갔느냐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수서의혹의 기본줄기는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를 사들여 주택조합이 특별분양 받도록 하는 과정에서 관계기관 공무원·정치권에 거액을 살포한 뇌물사건」으로 가닥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핵심이 전형적인 뇌물사건인만큼 검찰이 이 부분의 의혹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 쏟아지는 여론의 화살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뇌물수수 사실이 밝혀질 때 어느 선까지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도 함께 얽혀 있어 검찰수사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
이같은 정치적인 측면 외에 수사실무차원에서도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뇌물사건 수사의 핵심은 극도의 비밀성에 있는데 이 사건이 공개된 지 1주일 여가 지나 사건해결의 열쇠가 될 많은 증거들이 인멸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누구보다 검은 돈의 생리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비자금을 따로 마련해 두고 당사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직접·로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금품제공이나 뇌물수수의 범죄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대검의 수사관계자는 『한보의 정 회장은 로비자금을 전달할 때는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까지 집으로 돌려보낸 뒤 은밀히 돈을 건네줄 정도로 치밀하다는 평이 나 있다』며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만큼 돈이 건너간 사실을 밝혀내기에는 수사상 난점이 많다』고 뇌물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검찰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일본의 리크루트 의혹사건에 비유하면서 『동경지검 특수부에서 몇 달 동안 내사를 거쳐 방대한 증거를 수집한 뒤 비로소 본격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리크루트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성급한 수사결과 기대는 무리』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수서택지공급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장병조 문화·체육비서관 등의 직권남용 여부를 가리는 것도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범의를 쉽게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적용되지만 장 비서관의 업무(문화·체육)와 서울시의 택지공급 결정과는 법률적 상관관계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비서관으로서의 업무조정 행위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5공비리수사 당시 장세동 전 청와대경호실장이 일해재단 부지확보와 관련,건설부와 경기도 등에 압력을 넣고 건축제한을 해제토록 한 사실이 밝혀져 직권남용죄가 적용돼 구속기소됐지만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례가 있는 등 직권의 범위와 압력행사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사상의 어려움이나 법률적용의 애매함보다 검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수사결과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거나 어중간한 타협책으로 끝냈을 때 쏟아질 비난과 질책이다.
결국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다 뇌물수수 관련자의 확대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문까지 예상되고 있어 검찰수사는 한보그룹관련자 및 일부 공무원의 사법처리로 그칠 공산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이창민 기자>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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