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들의 뇌물외유사건이 처음 발설되었을 때도 당사자들은 「협회 등의 자금을 받아 외유하는 것은 관례」라고 태연한 반응이었다. 마치 그 사건의 배턴을 이어받기라도 하 듯 터진 수서특혜사건도 마찬가지로 그 많은 당사자들이 한결같이 「합법적으로 관례에 따라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상식적으로 처리된 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란 말이냐」고 당장하게 나오는 태도가 어쩌면 뇌물외유사건과 그렇게 닮을 수 있을까. 단순한 외유사건과 비교해 보면 수서사건은 당사자가 너무 많고 그 당사자가 모두 힘있는 국가기관이며 그들이 한결같이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해 입체작전을 교모하게 전개시킨 듯한 것이 특징이다.청와대,민자당,평민당,국회 건설위,건설부,서울시 등 국가경영을 이끌어 가는 중추기관이 모두 관련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아파트 분양의 특혜를 받게 된 주택조합 역시 경제기획원 등 주요 정부 부서와 기관 26개가 포함되어 있다. 한보라는 기업체를 포함하면 무려 33개의 공사기관이 얽히고 설켜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누가 보아도 의혹 투성이인 수서사건에 관련되어 있는데도 누구 하나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례대로 처리했을 뿐이라는 청와대가 서울시에 민원이첩 공문을 보낸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비서관을 서울시회의에 참석시켰고 민자당은 당정회의 석상에서 행정부 쪽에 선처를 요청했다. 야당인 평민당은 사퇴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시에 총재명의로 협조공문을 보냈다. 건설부는 국회 건설위의 청원심사과정에서 특별분양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 해석에 따라 국회 건설위는 그날로 즉각 그 청원을 채택했고 과거 네 번이나 불가방침을 밝혀온 서울시가 그 청원을 받아들여 특혜공급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관계기관들이 하나의 시나리오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 같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수서 드라마를 연출한 장본인이 바로 한보라는 기업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즉 여러 기관들이 한보의 로비에 말려 이렇게 연기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연출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흐름의 기조는 주택조합에 대한 특혜분양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합법성이다. 그런 식의 분양은 새치기나 다름없는 것이고 그래서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려온 일반 서민주택 청약자들에게 얼마나 손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지적은 이 드라마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또 한보가 상식적으로 택지가 될 수 없는 자연녹지를 임직원 명의로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팔고,그 땅이 26개 주택조합에 분양된 뒤 시공권까지 따내는 과정을 되새겨볼 때 이 드라마는 서막에서부터 빈틈없는 연출솜씨가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거꾸로 만일 불쌍한 무주택 서민을 위한 특별청원이 나왔을 때 관계기관이 모두 이런 식으로 일사불란하게 나서 처리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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