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회교학자 주장/바트당 창시자 미셸·아프락사상에 심취/쿠웨이트합병→이스라엘 축출→팔 해방계획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위대한 아랍건설」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치열한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바트당 창시자 미셸·아프락의 사상에 심취돼 있기 때문에 이번 걸프전쟁을 한없이 끌고나가려 할 것이라는 글이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요르단의 회교학자 시나·아티예씨는 4일 요르단 타임스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아랍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바트(부활)주의의 향도역을 자임하고 있는 사담은 이슬람교 창시자였던 알·후세인·이분·알리를 본받아 아랍의 단결을 위해 싸우다 죽은 영웅으로 추앙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아티예씨의 기고문 요지이다.
부활 또는 재생을 의미하는 바트주의는 아랍민족주의를 통해 새로운 아랍문명의 재건을 꿈꾸던 미셸·아프락과 살라·비타르에 의해 탄생됐다.
특히 아프락은 아랍세계가 14세기 이후 분열된 채 빈사상태에 있다고 판단하고 아랍의 단결만이 이를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바트주의는 그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랍의 단결을 성취해야 한다는 아랍민족주자의 사테·후사리의 영향을 받게 됐다.
아프락의 사상에 경도된 사담·후세인은 과거 수 차례에 걸쳐 아랍의 일부 산유국들에 편중된 부의 공평한 분배를 촉구해왔다.
아랍의 형제국인 수단인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수많은 다른 아랍국들이 채무에 쫓기는 상황에서 일부 석유부국들이 눈을 돌리는 것은 아랍의 단결에 위해요소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47년 시리아에서 창당된 바트당은 단결과 자유 그리고 사회주의에 바탕을 둔 「하나의 아랍」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트당은 또 팔레스타인 해방만이 아랍단결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획정된 아랍의 국경선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아랍의 단결과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염두에 둔 계획된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
사담·후세인은 쿠웨이트를 합병함으로써 이라크를 아랍에서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만들어 외세를 몰아내고 이스라엘로부터 팔레스타인땅을 되찾겠다는 계산을 했다.
사담은 지난 78년 바트당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나에게 10년 정도의 집권을 허락한다면 내가 바트주의에서 배운 바에 따라 범아랍주의를 건설하고 말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결국 그는 그의 약속을 지켜 강력한 아랍국가를 건설해놓았다.
사담이 개발한 알 후세인미사일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맞는다.
알 후세인은 이슬람 창시자였다. 모하메드의 손자 알·후세인·이분·알리에서 따온 것이다. 이분·알리는 불과 70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순교한 이슬람의 영웅이다.
사담이 최근 CNN TV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사용한 미사일 이름을 「스커드B」가 아닌 「알 후세인」이라고 애써 정정한 데서도 이번 전쟁을 최고 성전(시가스)으로 격상시키려는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사담은 이 인터뷰에서 『우리 조상이 불과 70명을 가지고도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싸웠는데 1천8백만의 인구를 가진 우리가 끝없는 투쟁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결사항쟁을 강조한 바 있다.
아프락의 바트주의에 충실한 사담은 이라크로 상징되는 「아랍의 힘」을 전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다른 아랍국들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아프락은 한때 사담의 독재정치에 반기를 들기도 했으나 원리원칙을 엄격히 따르는 수제자였고 사담에게 위대한 아랍건설의 마지막 희망을 걸었었다.
지난 89년 이라크에서 서거한 아프락은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담은 신이 이라크에 줄 선물인 동시에 이라크가 아랍세계에 줄 선물이기도 하다』<암만(요르단)=이상석 특파원>암만(요르단)=이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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